지난해 경기 둔화 우려 속 약세를 이어왔던 중국증시에서도 연일 상한가를 찍으며 각광받은 테마주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밀키트 관련주다. 중국 관영 증권시보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 달 동안 밀키트 테마주의 누적 상승 폭은 15%에 달했다. 그 중 후이파식품(惠发食品)과 궈롄수이찬(国联水产)은 각각 29%, 72% 폭등하는 등 개별 종목 상승 폭은 더욱 두드러졌다.
최근 중국증시 내 관심사는 밀키트 소비 대목으로 부상한 춘제(春节·중국의 설)에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춘제 기간 중 밀키트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43.6% 증가한 1300억 위안을 기록했다. 한 해 판매액이 약 6000억 위안(약 110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춘제 기간 판매 비중이 무려 20%에 달하는 것이다.
춘제 기간 밀키트가 이처럼 불티나게 팔리는 배경에는 선물용 밀키트의 인기도 자리잡고 있다. ‘중국 신년 선물세트 소비자행동 관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니엔예판(年夜饭·춘절 저녁에 먹는 음식) 밀키트세트는 처음으로 춘제 선물세트 판매량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폭발적 성장…2026년 시장 규모 200조원 전망
‘위즈차이(預淛婇·미리 제조한 식품)’라고 불리는 중국의 밀키트는 특정 요리에 필요한 손질된 식재료와 적정량의 양념으로 구성된 제품을 말하는 한국의 밀키트와 달리 간편하게 데워 먹는 즉석식품과 냉동식품 등까지 포함한다.팬데믹 여파에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 밀키트 시장은 2022년에 이어 2023년까지 2년 연속으로 4000여곳의 신생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중국 요식업 브랜딩 전문가인 페이청후이(裴成辉) 전 하이디라오 브랜드 마케팅 책임자는 “2022년이 ‘밀키트 원년’이었다면 2023년은 ‘폭발적 성장의 해’였다“고 평가했다.
중국 컨설팅 업체 아이미디어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밀키트 소비층은 대도시, 여성, 육아, 직장인의 4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소비자들이 직접 장을 봐서 요리하거나 식당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밀키트를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밀키트의 주요 소비층인 1인 가구 외에 가족 단위 소비층 역시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수요를 겨냥해 중국 밀키트 전문업체 전웨이샤오메이위안(珍味小梅園)은 집밥, 특색있는 면요리, 맛집, 파티 등 4가지 시리즈의 밀키트를 출시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기업들이 연구개발(R&D)과 생산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밀키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중국 국민음식인 카오야(烤鴨·오리구이)와 훙샤오러우(紅燒肉·돼지고기조림)는 물론 고가의 보양식인 포탸오장(佛跳墙·불도장)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밀키트를 활용하는 식당들도 많다. 중국식당협회 통계에 따르면 밀키트를 사용하는 경우 식재료 비용이 약 5% 증가하지만, 인건비를 10% 절감할 수 있어 순이익이 7%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다양한 잠재 수요를 기반으로 한 밀키트 시장의 향후 전망은 여전히 밝다. 중국 정부 산하 연구원인 중국전자정보산업발전연구원(CCID)은 지난해 6000억 위안까지 성장한 중국 밀키트 시장 규모가 2026년에는 1조720억 위안(약 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최근 ‘마자추팡(马家厨房·Ma’s Kichen)’이라는 이름의 밀키트 기업을 설립한 것만 봐도 중국 밀키트 시장의 잠재력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밀키트 인기에 훠궈 식당은 ‘울상’
겨울철 특히 뜨거웠던 훠궈 식당 분위기가 급격하게 식어가고 있는 것도 밀키트의 흥행과 무관하지 않다. 스젠(食見)데이터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2월 기준 123만 9500곳의 식당·카페가 폐업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중 훠궈식당은 3만 3700곳에 달했다. 개업한 지 반년이 채 안 된 ‘뉴페이스’는 물론 인기 브랜드 가맹점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미국·캐나다·프랑스 등 해외에도 다수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유명 훠궈 브랜드 탄야쉐(谭鸭血)는 지난해 매장 수가 654곳에서 470곳으로 줄어들었다. 이밖에 셴허좡(賢合莊), 류이서우(劉一手), 샤오룽칸(小龍坎) 등 중소형 브랜드들은 물론 중국 1위 훠궈 브랜드인 하이디라오까지 매장 수를 줄이고 있다.
훠궈 식당이 줄폐업 위기에 몰린 건 소비 둔화로 중국 대부분의 업계에 가격 인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훠궈 가격은 오히려 오른 탓이다. 일례로 하이디라오에서 가장 비싼 육수는 99위안(약 1만8000원)에 달한다. 여기에 고기와 채소 등 각종 토핑은 별도로 주문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훠궈 가격이 1인당 200위안(약 3만7000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해 중국 훠궈 식당 이용자의 45.5%가 50~100위안을 지출했다는 통계를 감안하면, 현재 물가로는 하이디라오에서 육수만 먹을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중국 소비자들이 훠궈 자체를 외면하는 건 아니다. 가성비 좋은 훠궈 밀키트로 집에서 훠궈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퇀이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11월 훠궈 밀키트와 훠궈 소스 등을 포함한 훠궈 재료 판매량은 전달 대비 62% 늘었다. 이 기간 신선식품 배달 업체 딩둥마이차이(叮咚買菜)의 훠궈 밀키트 판매량 역시 40% 가량 뛰었다.
점유율 5% 넘는 기업 없어...왕좌는 아직 공석
중국 소비자들의 밀키트 사랑이 훠궈로까지 이어지면서 활로 모색을 위해 밀키트를 판매하는 식당들도 늘고 있다. 중국 프랜차이즈경영협회가 발표한 ‘2022 중국 프랜차이즈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진궁푸(真功夫)와 샤오난궈(小南國) 등 중국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밀키트 판매 비중을 85~100%까지 확대했다.
이 밖에 월마트, 허마셴성(河馬先生) 등 유통기업은 물론 거리(格力)와 거란스(格蘭仕), 하이얼즈자(海爾智家) 등 가전업체들까지 밀키트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에 밀키트 시장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밀키트 브랜드만 3102개로 전년 동기 대비 11.14% 증가했다. 여기에는 오프라인 매장 400곳을 연 기업, 생방송 판매 2억5000만개를 달성한 기업 등 소위 ‘잘 나가던’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아직 중국에서 밀키트의 1인 평균 소비량은 독보적 1위인 한국의 3분의 1, 일본·미국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게다가 상위 10곳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전부 합쳐도 14%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 점유율이 5%를 넘는 기업이 아직 없다. 선도 기업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견인차 역할을 하는 기업이 있어야 시장이 더 안정적이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단펑 중국 식품산업 분석가는 “중국 밀키트산업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호황을 누리게 됐고,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전국적인 인지도를 구축한 브랜드가 없다”며 “밀키트 산업 발전의 핵심은 표준화, 전문화, 브랜드화, 규모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