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에서 막대한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모기지) 만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지역은행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의 수치를 인용해 올해 상환 및 재융자해야 하는 오피스 관련 상업용 모기지 규모가 1170억 달러(약 152조원)에 달한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달리 이자만 납입하다가 만기일에 원금을 한 번에 갚는 만기일시상환 방식을 취한다. 재융자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큰 셈이다.
현시점에서 예상되는 손실 규모는 2008년 주택 시장 위기 때보다는 훨씬 적다. 그러나 최근 오스트리아 부동산 기업 시그나그룹의 지주사가 파산 신청을 한 사례에 비춰, 미국의 일부 부동산 개발업체들도 생존이 위협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시그나그룹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의 지분 절반에 대한 회사 소유권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미국 오피스 시장에서 '눈물의 손절'이 잇따를 수 있는 셈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일부 잠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실제로 단행하기 전에 재융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문제다. 단적인 예로 지난달 뉴욕 부동산 재벌 애비 로젠은 10개월 간의협상 끝에야 뉴욕 시그램 빌딩을 재융자할 수 있었다.
만기를 앞둔 상업용 모기지의 약 3분의 2는 은행권이 보유하고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으로 이들 대출의 연체율은 3분기 말 기준으로 1.5%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낮은 연체율에도 불구하고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봤다. 지난달 미국 일부 경제학자들은 은행이 보유한 오피스 대출의 40%가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이를 보유하고 있는 수십개 지역은행들의 건전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엘링턴 매니지먼트의 상업용 부동산 부문장인 레오 황은 “사람들은 지역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상업용부동산 저당증권(CMBS) 시장은 더 위태롭다. CMBS란 금융기관이 업무용 빌딩이나 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빌려준 대출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발행하는 증권을 일컫는다. 보험사, 연기금 및 개인 투자자들이 이 상품을 주로 구매한다. 미국의 CMBS 시장 규모는 약 8000억 달러에 달한다.
부동산 정보 업체 트렙에 따르면 CMBS가 자금을 조달한 오피스 대출 연체율은 11월 말 기준으로 6%대를 돌파했다. 이는 전년 동기의 1.7%에서 껑충 뛴 것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모기지가 곧 만료되는 605개 건물 가운데 224개가 재융자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출이 너무 많거나 임대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1974년 완공돼 2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통했던 시카고의 구 시어스 타워(현 윌리스 타워)도 재융자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이 건물의 모기지는 오는 3월 만기로, 담보로 잡힌 부채가 13억 달러에 달한다. 이자 지급 전 연간 수입은 부채의 7%에 그쳤다. 무디스는 연간 수입이 부채의 9%를 창출하지 못하는 건물은 올해 재융자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