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서울대'로 불리는 명문 국립대인 카렐대에서 21일(현지시간)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최소 14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이번 총격은 대낮에 벌어진 데다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프라하의 대표 명소인 카를교와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생해 그 충격이 더 컸다.
경찰 조사 결과 총격범은 24세 남성으로, 카렐대 예술학부 학생인 것으로 전해졌다. 건물을 유유히 활보하며 침착하게 조준 사격까지 한 것으로 드러난 총격범은 총기 허가증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경찰은 이날도 그가 여러 자루의 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체코는 다른 EU 국가에 비해 비교적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편으로 총기 면허를 취득하려면 건강검진과 무기 숙련도 시험을 필수로 받아야 하지만, 범죄 기록은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경찰은 총격범이 해외의 총기 난사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비트 라쿠산 체코 내무장관은 "당국은 (이번 범행이) 극단주의 이데올로기나 단체와 연관된 것으로 의심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공범이 있다는 단서도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총격범이 카렐대 특정 건물에서 강연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해당 건물에 있던 이들을 대피시켰지만 정작 실제 총격은 다른 건물에서 발생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증언과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총격범의 공격으로 학생들은 교실과 도서관 등에 갇혀 있다고 전하며 "혼란과 공포 그 자체"였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의 영상 속에는 사건 당시 철학부 건물 지붕에서 어두운 색 옷을 입은 채 총기를 들고 있는 총격범의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또 교내에서 잇단 총성이 울려 퍼지자 대피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일부 학생들은 총격범의 공격을 피해 건물 외벽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숨어있기도 했다.
총격 당시 교실에서 시험을 보고 있었다는 학생 야코프 베이즈만은 "총격범이 건물 내부에서 외부 발코니로 이동해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있었던 것 같다"며 "난간 너머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총격을 피해 교실 문을 막은 채 1시간 동안 있었다고 밝힌 그는 "맨 처음 총소리와 비명이 들린 뒤 이후 상황이 진정되는 듯 보였지만 30분 뒤에 더 많은 총격과 비명이 들렸다"며 "밖으로 나갔을 때 온통 피투성이였다"고 전했다.
경찰은 총격범이 이날 총기 난사에 앞서 살인을 저지른 정황도 파악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총격범은 이날 오후 프라하 외곽의 고향 마을을 떠나 프라하 시내로 향했는데, 그의 고향 집에서 그의 아버지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총격범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경찰은 총격범의 자택을 수색한 결과 지난 15일 프라하에서 한 남성과 그의 생후 2개월 딸도 살해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한편 1348년 설립된 카렐대는 유럽에서 오래된 대학 중 한 곳으로 재학생이 4만9500명이다. 이 중 철학부 재학생은 8000명이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은 "카렐대 철학부에서 발생한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과 친지들에게 깊은 유감과 조의를 표한다"며 총격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23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