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기간 새벽부터 시작되는 초번 근무와 공휴일 근무에 불응한 워킹맘에 대해 채용을 거부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배려 의무를 다하지 않아 부당한 처분이란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도로관리용역업체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하지만 새 용역업체 A사는 2017년 4월 B씨와 수습 기간 3개월의 근로 계약을 체결하면서 초번 근무와 공휴일 근무를 지시했다. B씨는 A사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두 달 동안 초번·공휴일 근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A사는 B씨의 근태를 이유로 그해 6월 채용 거부 의사를 통보했고 B씨는 중노위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노위는 재심판정을 통해 A사의 채용 거부를 부당 해고로 판정했다. 이에 A사는 다시 중노위를 상대로 재심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대로 2심은 "A사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B씨가 수습 기간 저조한 점수를 받게 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남녀고용평등법상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 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육아기 근로자란 사정만으로 근로 계약과 취업 규칙상 인정되는 초번·공휴일 근무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면서도 "회사가 육아기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 의무를 다하지 않아 채용을 거부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므로 채용 거부 통보의 합리적 이유, 사회 통념상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 5는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업무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 조정 등의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회사는 A씨가 육아기 근로자로서 (자녀를) 보육시설에 등원시켜야 하는 초번 근무 시간이나 공휴일에 근무해야 할 경우 양육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업소의 여건과 인력 현황 등을 고려해 보면 회사가 공휴일 근무 관련 육아기 근로자인 A씨에 대해 일·가정의 양립을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수년간 지속한 근무 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꿔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큰 저해가 되는 반면 회사의 경영상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 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 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