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양세형은 까불거리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이 남겨있다. 그런 그에게도 진지한 면이 있다. 지난 2018년 SBS 예능 ‘집사부일체’를 통해서 직접 쓴 시 ‘별의 길’을 낭독하면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최근 88편의 시를 모아서 ‘별의 길’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마흔살이 되기 전 목표로 삼았던 것을 이룬 것이다. 멋진 마흔살이 되기 위해 여러 도전들을 하고 있는 양세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집 ‘별의 길’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뭔가
언제부터 시를 썼고 행복한 놀이가 됐나
-까불거리긴 하지만 내면에는 감성적인 면도 있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아서 놀거리가 없었다. 새로운 걸 보면서 그것에 대해 이해하려고 글을 쓰다 보니까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시를 통해서 더욱 자세하게 알게됐다.
어렸을 때 백일장의 경험이 있나
-때부터 시를 쓰는 걸 좋아했는데 집에 불이나면서 모두 타버렸다. 그 이후에는 공책이 아니라 신문지나 도배지 같은 곳에 썼다. 학창시절에 시 쓰기 대회가 있었는데 어디서 베낀 게 아니냐며 선생님에게 혼난 기억이 있다.
시집에 88편의 글이 있는데 남다른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수능 때 400점 만점 88점을 받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88편을 넣게 됐다. 제가 아는 말 중에 제일 똑똑한 말들을 담아냈다. 마음이 순수한 면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배웠던 단어들이 제일 예쁜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배우는 단어 중에 어려운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 내 시집에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시가 많다
-어렸을 때부터 고집도 많았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저희 아버지의 말은 들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가 주신 선물인 것처럼 의도치 않게 이번 책을 출간한 날이 아버지의 생신이신 12월4일인 게 너무 신기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시집을 드린다면 뭐라고 하면서 드릴 것 같나
-다른 얘기는 안하고 “이거 13800원인데 아버지한테는 10000원에 드릴게요”라고 가볍게 얘기할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는 시를 잘 쓴다는 말보다 본인 옆에 시집을 두실 것 같다.
개그에서도 아이디어가 중요하고 시를 쓸 때도 소재가 중요하다. 개그맨의 경험이 시를 쓰는데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됐나
-개그 아이디어 짜듯이 소재들을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 풀어가듯 시를 쓴다. 개그에서는 웃기는 것만 해야 된다면 시는 웃긴 것뿐만 아니라 슬프고 감동적인 감정도 넣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책에 박진성 조각가 작품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박진성 조각가의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 박진성 조각가님의 조각상을 이연실 편집자님께 사진으로 받았을 때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거울을 봤는데 조각과 내 얼굴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각가님의 작품을 보면 누군가는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나 어렸을 때 친구들과 뛰어놀고 하다가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흰머리도 나고 사회에도 돈도 벌어야 하기도 하는 상황에 놓인다.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모든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 인세 기부를 결심한 계기가 뭔가
-집사부일체를 했을 때 등대장학회를 알게 됐다. 당시에는 등대장학회가 정식으로 설립이 되지 않아서 못하다가 최근에 정식으로 설립이 됐다고 해서 인세수익금을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
책을 한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할건가
-받자마자 제 자신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버지에게 드렸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가장 고생한 나 자신에게 사인을 해서 책장에 넣어놨다.
마음에 드는 시 한편이 있나
-'고개 들어 하늘들어’라는 시다.
독자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누군가가 짧은 글을 썼을 때 비꼬듯이 ‘시인 납셨네’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짧은 글을 쓰는 걸 기피하는 것 같다. 옛날부터 시는 재밌는 놀이로 알고 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부터라도 누군가가 SNS에 글을 썼을 때 닭살 돋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응원을 해주고 자신도 좋은 글을 써봤으면 좋겠다. 서점에서 제일 팔리지 않는 코너인 시 코너에서 시를 읽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시집을 출간한다고 했을 때 주변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 최근 SNS를 하지 않아서 책 출간에 대한 소식을 모르는 팬들과 동료들도 많을 것 같다
-주변 분들은 제가 시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응원을 많이 해줬다. SNS 계정을 닫은 건 아니지만 홍보 때문에 SNS를 하는 게 반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방송국 쪽에서 섭외 연락이 많이 오고 있어서 방송을 통해서 홍보가 많이 될 것 같다. 저의 진심을 알아주시는 분들이라면 호기심을 가지고 봐주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동생 양세찬의 반응은 어땠나
-동생도 출간 당일에 책을 받았는데 아직 소감은 못 들었지만 아마 아버지에 대한 글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시를 읽고 쓰는 게 연예인으로서 마음이 복잡할 때 어떤 도움이 되나
-위로를 받았던 건 행복한 감정보다는 슬픈 감정이다.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었을 때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쓴 글들이 있다. 그런 글들을 쓰면 마음이 풀린다. 그런 글들을 썼을 때는 술을 마시고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음날 일어났을 때 그 글을 보면 자신을 인정하면서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시를 쓰는데 얼마나 걸렸나. 어렸을 때 썼던 시들도 담겼나
-어렸을 때 썼던 시는 담긴 게 없다. 당시에는 시집을 출간할 줄 몰라서 다 버렸다. 시집에 수록된 시는 최근에 쓴 시들이다.
시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됐으면 하나
-모습과 시집을 냈을 때의 모습이 다른 점은 없다. 여러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멋진 마흔이 되기 위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
- 예전에는 서른이 되면 아저씨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40살이 됐을 때 내 자신이 비굴한 느낌이 들지 않기 위해서 자격증도 따고 체력도 기르기 위해서 오래달리기도 하고 있다. 새로운 목표들도 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를 읽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처음부터 글자를 좋아한 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보면 잠이 든다는 걸 알게 되면서 불면증이 심할 때 글을 보게 됐다. 커피 두잔 값을 내면 다른 사람들이 느꼈던 소중한 감정들을 배울 수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잘살고 있거나 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시집을 보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