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이슈가 청년들의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감 등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수의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의 되물림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는 한편 앞으로도 이 같은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자녀 출산과 양육 환경 등에 비관적 평가를 내놨다.
한국은행(한은)은 3일 국내 초저출산과 초고령화 등 극단적 인구구조 심화를 주제로 한 경제전망보고서(중장기 심층연구)를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이번 연구는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을 필두로 연구원과 조사국 등 12명 인력이 대대적으로 투입된 결과물이다.
한은은 청년들이 체감하는 경쟁과 불안감을 고령화·저출산 원인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해 9월 한국갤럽이 전국 25~39세 남녀 2000명(미혼 1000명, 무자녀 기혼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경쟁압력 체감도가 낮은 집단의 평균 희망자녀 수는 0.87명인 반면 높은 경쟁압력을 받고 있는 이들의 희망자녀 수는 0.73명으로 파악됐다.
또한 무작위 통제실험 결과에서도 주택마련 비용을 떠올린 그룹의 결혼 의향과 희망자녀 수가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0명을 4개 그룹으로 나눈 뒤 아무 정보 제공 없이 결혼·출산의향, 희망자녀수를 물어본 그룹과 주거비·교육비·의료비 관련 질문과 정보를 각각 먼저 제공한 3개 그룹을 나누어 조사한 결과 주거비를 연상하도록 한 그룹의 결혼의향은 43.2%로 여타 세 그룹(48.5%)보다 5.3%포인트 낮았다.
주택마련 비용에 대한 부담도 희망자녀 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녀를 가질 의향이 있는 미혼자 및 기혼자(총 986명)의 희망자녀 수를 보면 주거비 그룹은 1.54명으로 여타 세 그룹(평균 1.64명) 대비 0.1명이 적었다. 이 밖에 고용에 있어서도 취업 여부(취업자 49%-비취업자 38%)나 고용의 질(공공기관·공무원 58% 비정규직 36%) 등에 따라 결혼 의향이 엇갈렸다.
한은이 미혼자 1000명을 대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3명 중 1명(35.7%)이 "결혼을 하고 싶지만 취업이나 생활안정, 집 마련 등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미혼자와 기혼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출산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이유로는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44%)가 "아이 양육과 교육비용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히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부의 되물림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결혼·출산 기피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한은 설문 조사(전국 20~39세 청년 2000명 대상) 응답자 중 80% 이상이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다"면서 "앞으로도 10년간 사회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청년층 60% 이상은 "개인 노력에 의한 계층이동 가능성이 적으며 자녀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신 세대보다 더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비관적 시각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