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모델이 일본인이라고 주장한 보수 인사들을 상대로 조각상 제작자가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이 이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30일 조각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씨 부부가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변호사)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
그러자 김씨 부부는 "일본인을 모델로 한 적이 없고 각종 자료와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라며,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김씨 부부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심은 "이 사건 발언들은 단정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이자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른 허위에 해당한다"며 김 변호사가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김 변호사의 발언은 노동자상이 일본인 노동자들의 사진과 흡사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판례에 따르면 단순한 의견을 표명한 것은 민법상 불법행위인 명예훼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예술작품이 어떤 형상을 추구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 작품이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감상자의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에 놓인다"며 "섣불리 이를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로서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의 사진은 실제로 상당 기간 국내 교과서 등에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서 소개된 바 있다"며 "이 사건 발언들이 설혹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고로서는 위 발언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심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그 자체로 인신공격에 해당해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예훼손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