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 대표 "미국·이스라엘 창업 넘으려면 기술지주 역할 중요...스타트업 상장·매각 성과내"

2023-11-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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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회 스타트업과 투자자(VC) 연결...투자하고 싶은 회사 만들어

부임 후 네 가지 확고한 투자철학, 경쟁력 있고 지속가능한 팀 원해

투자 기업 상장, M&A, 구주매각 등 성과...최대 30배 가치로 회수

교수·학생들에 도움되는 투자 모델 고심, 대학 재정 안정에 보탬

사진고려대학교 기술지주회사
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 대표 [사진=고려대학교 기술지주회사]
대학 연구개발 성과를 상아탑에 묵혀두지 않고 기업 창업으로 연결해 사회 혁신을 끌어내려는 고려대학교의 노력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다. 올 상반기 코스닥 상장기업인 라온텍에 초기 투자한 ‘고려대학교 기술지주’ 얘기다. 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 대표는 “최근 고려대를 필두로 대학에서 교수·학생들이 창업한 기업이 성공한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며 “고려대 기술지주는 미국·이스라엘 등 창업 선진국 대비 뒤떨어진 국내 창업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데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기술 이해도 높은 투자자와 스타트업 연결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고려대 기술지주는 ‘2023년 하반기 ICT·소부장 프라이빗 IR(Investor Relations)’을 성황리에 마쳤다. 이 행사는 고려대 기술지주가 투자한 회사 가운데 유망한 기업을 추가로 선별해서 외부 투자자(VC)들과 연결하는 행사다.

장재수 대표는 “프라이빗 IR 행사의 주요 목적은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투자자보다 딥테크(심층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투자 경험이 있는 투자자를 찾아 연결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프라이빗 IR은 단순 투자 설명회가 아닌 기업들을 위한 멘토링 행사 성격도 짙다. 투자사 고위 관계자 10여 명이 행사에 참여해 기업 IR을 보고 사업적 관점에서 미흡한 부분을 지적한 뒤 무엇을 보완하면 투자하고 싶은 회사가 될지 자문한다. 연구개발에만 집중해 투자자 네트워크가 취약한 기술 기반 창업자들 애로사항을 보완함으로써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게 고려대 기술지주가 매년 상·하반기에 프라이빗 IR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다.

장 대표는 “올해 하반기 ICT·소부장 프라이빗 IR에선 △친환경 에너지 △로봇 소프트웨어 △양자통신 △배터리 소재 등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산업적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업들을 투자자들에게 소개했다”며 “몇몇 투자자들은 다른 IR 행사보다 유망한 기업이 많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고 귀띔했다.

고려대 기술지주는 대학에서 연구개발에 매진하던 박사급 전문가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시드머니(초기 투자금)’를 제공하고 추후 외부 투자자에게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됐다. 2009년 9월 설립돼 벌써 24년째인 국내 대표 기술지주회사다. KAIST 등 과기특성화대 기술지주보다 5년 앞서 시작했다. 딥테크 기술 베이스 창업과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

그동안 대학교수가 기술지주 대표를 겸임하던 게 관례였으나 삼성그룹 고위 임원 출신인 장 대표가 2019년 10월 부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 대표는 삼성그룹 미래기술육성센터장(전무)을 역임한 바 있다.

장 대표는 부임 후 네 가지 투자철학을 세우고 이에 근거해 유망 기업 발굴에 나섰다. △첫째로 창업의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정말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지 △둘째로 실제 사업을 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팀을 구성했는지 △셋째로 사업 모델이 지속 가능하고 성장·발전할 수 있는지 △사업모델이 사회와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등이다. 기업 투자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이지만 그동안 대학 기술지주회사에선 등한시하던 문제를 장 대표가 꼬집은 것이다.

장 대표는 “네 가지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찾고, 투자 후에는 사업 계획 등을 현실적으로 가다듬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투자하는 TIPS 프로그램(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에 선정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자들은 고려대 기술지주와 TIPS 프로그램 지원을 합쳐 초기 자금 약 10억원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오랜 연구개발로 인해 초기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창업자들에게 많은 보탬이 된다. 실제로 고려대 기술지주가 이번 프라이빗 IR에 선보인 스타트업 4곳도 대학교수가 10~20년 장기 연구한 후 창업하거나 고려대에서 학위를 받고 기업에서 근무하던 도중 창업한 사례들이다.
 
사진고려대 기술지주
고려대 기술지주가 지난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국내 주요 벤처캐피탈 10여곳을 초청해 '2023년 하반기 ICT·소부장 프라이빗 IR'을 진행했다. [사진=고려대학교 기술지주회사]
 
최근 1년 내에 상장·M&A·구주 매각 등 성과···창업자 동의 꼭 받아

기술지주는 공익성과 별개로 사업 지속을 위해 수익을 내야 하는 영리법인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많은 기술지주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반면 고려대 기술지주는 장 대표 취임 후 성과를 꾸준히 창출하며 회사 지속 가능성을 입증했다. 

기술지주가 수익을 내는 방법으로는 초기 투자한 기업에 대한 △상장(IPO) △인수합병(M&A) △구주 매각 등이 꼽힌다. 고려대 기술지주는 최근 1년 동안 세 가지 수익원을 모두 실현했다.

상장 사례로는 지난 3월 코스닥에 기업공개를 진행한 마이크로디스플레이 반도체 칩 전문 기업 라온텍이 대표적이다. 

이어 장 대표는 기업 인수합병으로 성과를 낸 사례로 수소저장용기용 부품을 만드는 에스첨단소재를 꼽았다. 에테르씨티가 에스첨단소재를 인수할 당시 고려대 기술지주가 보유한 지분도 함께 사들였다. 

구주 매각은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대학원생이 공동 창업한 ‘엔도로보틱스’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내시경을 탈부착할 수 있는 무절제 수술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엔도로보틱스가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할 당시 고려대 기술지주도 보유 지분 중 50%를 투자자들에게 매각했는데 초기 투자가치 대비 30배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장 대표는 “고려대 기술지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는 창업자와 사전에 상의하고 동의를 받은 후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자가 멋대로 지분을 정리해 사업에 차질을 겪거나 최악에는 경영권을 뺏기는 창업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장 대표는 “초기 투자가치 대비 기업가치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이익 실현을 위해 구주 일부를 매각한다”며 “다만 투자자들이 지분 확보를 원하지만 창업자가 구주를 매도할 수 없는 경우 또는 투자유치 금액이 초과되어 투자를 못하는 경우에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형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에게 구주 매각을 할 때에도 해당 투자자가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매각 절차를 멈추고 있다”며 “기업·투자자·기술지주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하려면 M&A도 창업자 옵션 되어야

장 대표는 한국이 미국·이스라엘 등 창업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지주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과거 한국은 중화학·전자·ICT 등 산업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패스트폴로어(1인자 추종) 모델로 경제성장을 견인했다”며 “따라서 정부 정책이나 기업 전략 관점에서 대학이 좋은 연구 성과를 보유하고 있어도 이를 발굴하여 사업화하는 메커니즘(작동 원리)이 약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퍼스트 무버(기술 선도) 중심인 선진국 경제에선 좋은 아이디어와 연구개발 성과를 발굴해 초기에 투자하고 투자자·기업과 연결하는 기술지주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게 장 대표의 생각이다. 

장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은 대부분 기업공개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전개한다”며 “그래서 딥테크 창업을 해도 이 기술을 활용해 매출·영업이익을 내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미국·이스라엘에서 딥테크 창업은 대부분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기업 매각)를 우선시한다”며 “매출·영업이익보다 첨단 기술 개발과 핵심역량 강화에  더 사업 주안점을 둘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고무적인 부분은 최근 국내 기업들도 딥테크와 협력해 신사업을 추진하고 성장 가능성이 보이면 회사를 인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이러한 국내 기업의 관점 변화는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 대표는 고려대 기술지주의 미래 발전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워뒀다. 그는 “기술지주도 스타트업인 만큼 모든 걸 잘할 수는 없고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며 “당분간 투자를 양적으로 확대하기보다는 (대학과 상생하는) 기술지주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고려대 기술지주는 매년 회사 25~30곳에 평균 3억원, 총 70억~8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장 대표는 대학교 기관과 투자사 중간인 만큼 고려대와 소속 교수·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투자모델을 고민 중이다. 대규모 투자는 민간 투자자와 협력해 후속 투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계획이다. 사업이 안정화되면 규모있는 투자를 위한 재원확보도 고려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장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 창업의 성공사례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현재는 상장과 인수·합병 등 의미 있는 성과가 1년에 1~2곳 계속 나오도록 하는게 현실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학들이 등록금이 10여년 동안 사실상 동결돼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술지주가 기술연구 성과를 통해 수익을 올려 대학 재정의 선순환 구조에 기여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재수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술전략 전문가로, 대학의 연구개발이 수익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2019년 10월부터 고려대 기술지주를 이끌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 삼성전자 기획기술팀, 정보통신총괄 신규사업기획그룹장, 미국 SISA법인장, DMC연구소 기술전략팀장을 거쳐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장 겸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사무국장으로 재직했다. 고려대학교 전자공학 학사와 미국 시러큐스대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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