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권은 이 계리적 가정이 적용된 3분기 실적부터 ‘착시효과’가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착시효과가 사라진 뒤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보험사 매물의 가치도 이에 맞춰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3분기 순익, 메리츠화재가 제일 많았다…손보업계 지각변동
IFRS17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2017년 5월 마련하고 올해 1월 도입한 국제보험회계기준이다. 기존 IFRS4에서 원가로 표시하던 보험부채를 시가로 표시하도록 변경하는 게 핵심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험부채 평가를 위한 계리적 가정의 자율성이다.
하지만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가 보험부채 평가 기준을 스스로 설정하면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보험부채가 보험사 경영실적의 핵심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탓에 계리적 가정에 따라 당기순이익 등 경영실적이 천차만별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금감원이 지난 5월 계리적 가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최근 보험사별로 발표된 3분기 실적부터 이 지침이 반영됐다. 이와 관련해 이명순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지난 7월 보험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보험사별 기초가정에 차이가 큰 것으로 확인됐고 합리적 근거 없이 가정을 낙관적으로 적용해 부채를 과소 계상한 사례도 발견됐다”며 “보험사가 회계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보험부채를 평가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보험업권에서는 자율성을 핵심으로 하는 IFRS17에 금융당국이 지침을 내리는 데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국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그에 따른 회계변경 효과는 전진법을 적용하되 제한적으로 소급법을 허용하겠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올해 2분기까지는 회사마다 다른 계리적 가정을 사용해왔는데 3분기부터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공통된 기준이 적용됐다”며 “금융당국으로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정이 되지 않도록 하고 보험사별 비교성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장성 상품 늘리는 생보사…M&A 시장 활기 돌까
보험업권에서는 올해가 IFRS17 도입 첫해인 만큼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내년 이후부터는 새 회계제도가 연착륙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올해 주춤했던 M&A 시장에도 조만간 활기가 돌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올해 보험업권 M&A 시장에는 KDB생명, MG손해보험, ABL생명, 롯데손해보험 등이 매물로 나왔지만 이렇다 할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나금융이 KDB생명 인수를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발을 뺐다. 동양생명, AXA손해보험도 잠재적인 매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매각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보험사 매수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IFRS17 적용 이후 ‘실적 과대평가’에 대한 우려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사 실적을 두고 사는 쪽과 파는 쪽의 시각이 달라 가격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 인수 의사가 있는 기업들도 무리하는 대신 기다리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이드라인 적용 이후 실적과 서로의 눈높이가 조정되고 보험사들이 체질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면 다시 매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