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세계 무역 '분절화' 시대… '하이브리드' 통상으로 위험 대비하자

2023-10-31 05:00
  • 글자크기 설정
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최근 글로벌 통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단어가 바로 분절화 또는 파편화로 번역되는 ‘프래그먼테이션(fragmentation)’이다. 세계가 하나로 촘촘히 연결되어 효율적 분업에 의한 글로벌 가치사슬이 국제 무역을 이끌어왔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국제 무역은 특정 국가그룹이나 특정 지역 내에서의 무역으로 조각조각 나누어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세계 무역의 분절화라는 말이 나왔다. 세계 전체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되니 분절화된 무역이 거래비용을 상승시키고, 최근의 세계적 인플레이션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도 쉽게 이해된다.
 
국제 무역이 분절화 현상을 보이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그러나 핵심 원인은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미-중 갈등이다. 흔히 세계를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사회와 우리 삶의 방식에 직접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국경이 폐쇄되자 글로벌 공급망이 일시에 무너졌다. 전염병 확산으로 공장이 멈추면서 거기서 만들던 부품에 의존하던 다른 중간재나 최종재 생산 공장도 연쇄적으로 멈추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동안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해 오던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예상치 못한 재해가 발생해도 빠르게 원래대로 복귀할 수 있는 소위 ‘복원력(resilience)’이란 개념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화두로 등장하였다. 세계 전 지역에 흩어져 있던 공급망이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되었는지가 평가되었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사고에 대비해 생산시설의 재배치를 포함한 생산망 조정과 자국 내 재고 증가가 나타났다. 이에 더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부품은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내 생산이나 상대적으로 위험 발생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으로 이동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자연 글로벌 무역이 축소되고, 회복력이 높은 특정 공급망 내에서의 무역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이 세계 무역의 분절화로 이어졌다.
 
미-중 간 갈등도 국제 무역의 분절화 현상의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트럼프 대통령 초기 단순 무역 갈등과 관세전쟁에서 시작된 양국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패권 경쟁으로 발전하였다. 게다가 민주라는 가치와 시장경제라는 개념이 추가되면서 이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시장경제 국가들과 중국을 중심으로 권위-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대결하는 블록(bloc) 대결로 변화하였다. 여기에 경제 안보가 추가되어 서로 일방적인 수출제한이나 수출통제 조치들이 남발하고 있다. 그 결과가 국가 안보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품목의 상대 경쟁국으로의 수출이 제한되거나 자국 내 생산이나 인접국 또는 우방국 생산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지정학적 공급망을 형성해 세계 무역의 분절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 산업보조금이 더해져 신기술 개발이나 자국 내 투자 유치를 위해 천문학적 보조금이 살포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세계 무역의 분절화가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 복원력 강한 공급망을 추구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의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미-중 간 대결도 패권 경쟁의 성격상 쉽게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향후 점차 격화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외무역(수출입의 합)이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나들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는 대외무역환경이다. 당연히 세계 무역의 분절화가 심화되는 기간에 딱 들어맞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 분열과 갈등이 우세한 상황에서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책을 펴고 있으니 우리도 이와 같은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화합과 협력이 요구되는 이슈도 있다. 인류 전체가 닥친 기후변화 위기와 같은 문제가 그것이다. 기후변화 위기는 결코 어느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모든 국가의 협력이 필수이며, 어느 정도는 희생과 노력이 요구되는 지구적 과제이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팬데믹이나 홍수와 가뭄 등 글로벌 공급망에 위험을 초래한 재해도 인류의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생태환경 파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은 회복력있는 공급망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결국 한편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협력을 모색하는 하이브리드(hybrid) 통상정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이브리드 통상의 핵심은 균형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하이브리드 통상의 요체이다. 지정학적 공급망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때론 이를 뛰어넘는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수출증대와 시장확보를 추구하는 동시에 상대국의 발전을 위해서 포용적 나눔의 통상도 같이 가야 한다. 균형을 지키려면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어느 국가든지 수긍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기준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분절화된 세계 무역 환경에 적합하면서도 중장기적으로 다시금 세계의 화합과 협력을 이끌어 세계화 2.0을 구현할 수 있는 선진 대한민국의 하이브리드 통상을 기대해 본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