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오너가에서 상속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면서 경영권을 위협하고 기업 승계까지 위태로워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기업 승계는 '기업 존속'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기업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국내 경제에 치명타로 이어질 수 있어 이와 관련된 법적 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조계는 특히 경영권 분쟁을 유발하는 상속제도로 '유류분 제도'를 꼽는다.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이 제기될 위험성을 낮추고 기업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신탁 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100년 기업' 7곳뿐···유류분 제도, 기업 승계에 '걸림돌'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업력 100년 넘은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몽고식품 등 7곳에 불과했다. 일본이 3만3000개, 미국이 1만9000개 이상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후계자를 찾지 못하거나 상속세 문제, 상속 이후 경영권 분쟁 등으로 기업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국내 기업이 회사를 매각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업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기면 후계자가 기업 지배력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나머지 상속인들이 다른 주주들과 연대해 후계자 경영권을 상실시킬 위험도 발생한다. 유류분 제도 때문에 후계자는 언제든 다른 상속인에게 유류분 반환 소송을 당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신탁' 활용 승계 방식···"기업 지배력 확보 가능"
법조계는 유류분 반환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우려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신탁'을 활용한 기업 승계 방식을 제안한다. 신탁계약에 의한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고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는 내용으로 수익권을 설계하면 유류분 소송이 제기될 위험 없이 기업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본인 재산을 금융기관에 맡기고 생전에는 위탁자가 원하는 대로 관리하다 사망 이후에는 생전에 미리 정해둔 방식으로 수익자에게 상속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기업 승계 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위탁자인 창업주가 일정한 목적에서 재산권을 수탁자인 신탁회사에 이전하고 수익자인 상속인들은 신탁행위로 인해 수탁자에게 이익을 요구할 권리인 '수익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익권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신탁의 실질에 반하지 않는 한 위탁자 자유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창업주가 상속인 한 명에게만 수익권을 분배하면 유류분 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공동상속인 모두에게 수익권을 분배하면 주식이 분산돼 후계자가 기업에 대해 지배력을 갖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수익권 내용을 분리해 후계자에게는 의결권 행사 지시권을, 다른 상속인에게는 주주에게 부여되는 배당이익 수령권을 분배하면 유류분 침해 문제를 막고 창업주가 갖던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후계자가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궁주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은 주식에서 의결권만 분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의결권만 분리해 신탁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수탁자에게 의결권을 행사하게 할 목적으로 주식 자체를 신탁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신탁수익권 내용으로 수익자에게 의결권 행사 지시권을 부여하는 것은 신탁 수익권 일부를 구성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회사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식 소유권 자체는 완전하게 수탁자에게 이전하고 그 구체적인 행사 방법만 신탁행위로 정해 채권화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