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칼럼] TV홈쇼핑 업계, 수수료 갈등 접고 '대타협' 나설때

2023-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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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IPTV가 홈쇼핑 송출수수료에 의존해서 먹고살기는 어려운 상황

정부가 적절한 규제를 통해 산업에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시대는 끝

홈쇼핑이 계속 붙들려 있으면 유통생태계에서 홈쇼핑의 도태는 시간 문제

정연승 교수
[정연승 교수]



 
필자는 TV홈쇼핑 사업자의 재승인 심사위원으로 홈쇼핑과 인연을 맺었고 그동안 산업의 부침을 지켜봤다. 올 하반기처럼 홈쇼핑에 대한 뉴스와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때는 2015년 이른바 ‘백수오 사태’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홈쇼핑에 파는 물건, 등장인물이 아니라 송출수수료라는 ‘생존’에 대한 얘기가 화두가 된 것이다.
 
■ 홈쇼핑의 (거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장면 #1) 2018년 10월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
<조순용 한국TV홈쇼핑협회장> “홈쇼핑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을 6000억원 정도 냈다. 단 1원도 써 본 적이 없다. 홈쇼핑 발전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노웅래 과방위원장> “방송통신발전기금 더 낼 수 있으면 팍팍 더 내시면 우리가 더 좋은 데다 많이 쓰도록 하겠다.”(녹취록 발췌)

 
법률상 속성은 방송이지만 본질은 유통인 TV홈쇼핑에 대한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방송이라고 기웃대지 말고 열심히 장사나 하라는 얘기로 들린다. 홈쇼핑이 내는 송출수수료와 방송발전기금은 방송산업의 든든한 돈줄이다. 특히 홈쇼핑이 채널번호를 배정받고 케이블‧IPTV에 지급하는 송출수수료는 2022년 대한민국 전체 방송산업 매출액 20조원의 12% 수준인 2조4000억원에 이른다. 케이블‧IPTV 방송산업 매출액의 41.9%, 30.2%를 송출수수료가 차지한다. 2014년에는 그 비중이 32.5%, 11.8%에 불과했다. 8년 만에 IPTV 송출수수료 비중은 2.5배 늘었다. 가히 홈쇼핑은 유료방송사업자의 ‘현금자동인출기(ATM)’였다.
 
그런데 홈쇼핑이 더 이상 돈줄 노릇을 할 수 없게 됐다. 올해 홈쇼핑 경영지표는 여태껏 본 적 없는 수치를 볼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통상 홈쇼핑 영업이익 규모가 1000억원 넘는 곳이 4개 정도였는데 올해는 고작 1개에 불과할 것이다' '영업이익률이 돈을 잘 번다는 통신사업자보다 낮아질 것이다' 등 곡소리뿐이다.
 
송출수수료를 두고 홈쇼핑·케이블TV 간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과거와 달리 당사자들이 복수다. 올해는 갈등이 봉합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는 홈쇼핑·IPTV 간 분쟁으로 번질 기세다. 홈쇼핑은 죽는다고 아우성인데 유료방송이나 정부의 상황 인식은 생경하다. 케이블TV업계는 자신들 방송 매출액에서 41.9%를 차지하는 홈쇼핑 송출수수료가 갑자기 줄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응이다. 방송 송출이 중단되면 시청권이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홈쇼핑이 모바일 매출액을 반영하지 않아 채널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대가 산정 패러다임 개혁 등 근본적 해결 노력보다는 메이저리그 방식 도입 등 눈앞의 갈등 봉합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이제 유료방송은 홈쇼핑에 채널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는 임대사업자 역할을 줄여야 한다. 좋은 콘텐츠와 서비스로 수익을 늘려야 한다. 홈쇼핑 17개 채널 중 일부가 몇몇 케이블TV·IPTV에서 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시청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왜 갑자기 홈쇼핑 방송이 국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방송이 되어야 하나? 다른 홈쇼핑 채널, 홈쇼핑사 모바일앱, 다른 온라인 쇼핑 등 대체재가 수두룩하다. 이른바 ‘사적계약’이 종료되어 방송을 내보내지 않는 것이 왜 문제인가? 홈쇼핑 모바일 매출을 송출수수료 협상에 넣는다 하더라도 정체 또는 감소하는 산업 사양화 흐름을 뒤집거나 부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공평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윈윈하며 유료방송이 홈쇼핑을 통해 편하게 수익을 올리던 시절은 지났다. 유료방송은 과거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홈쇼핑이 죽고 다음 차례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같이 살 방법을 모색해 볼 것인가? 실마리는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달려 있다.
 
■ 규제산업의 숙명은 변하지 않는다
 
장면 #2) 2023년 10월 20일, 방송통신심의위원장-홈쇼핑 대표자 간담회
<류희림 위원장>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쇼호스트에 대해 제재가 내려진 지 6개월도 안 돼서 변칙적인 방법으로 다시 홈쇼핑 방송 출연 기회를 주는 데 대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정(윤정)씨의 연내 복귀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연합뉴스 보도)

 
TV홈쇼핑은 과기정통부 승인을 받아야만 사업을 할 수 있다. 지난 28년간 깐깐한 재승인 과정을 밟은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재승인 과정이 무난하다는 평가다. 이제 정부가 시시콜콜하게 잣대를 들이대던 시대도 아니다. 이른바 ‘사적계약’이라는 송출수수료가 산업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다 보니 ‘공적 규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규제기관장 한마디에 홈쇼핑사는 공정거래 리스크를 무릅쓰고 다음 날 방송의 특정 인물 출연을 취소했다.
 
지난해 시행령 개정으로 홈쇼핑은 7년마다 재승인을 받게 됐다. 5년에서 7년으로 기간이 늘어난 건 개선이지만 7년에 맞춘 세부사항 변경이 아직 없다고 한다. 사업자들은 재승인 기간 동안 아주 상세한 사업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계획서는 웬만한 법률서적보다 두껍다. 3년 후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7년짜리 계획을 미주알고주알 세워 제출해 승인받아야 하고, 사업계획은 금과옥조로 받들어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지켜야 한다. 7년 전에 지금과 같은 쿠팡이 될지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나? 과기정통부는 매년 그 많은 항목을 지켰는지 점검한다. 코로나19 때 잠시 예외를 인정했을 뿐이다. 사업계획상 문구 해석은 아주 경직되고, 담당자가 바뀌면 점검 결과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도 하며 심지어 사업자에게 행정처분도 내린다.
 
홈쇼핑의 가장 큰 유통 측면의 공헌은 중소기업 판로 확대 역할이다. 방송법령에 따라 재승인을 하는 과기정통부는 중소기업 편성 비중 정도만 규율하면 족하다. 사업계획서에 중소기업 판매수수료율 계획(사실상 인하를 유도)을 요구하는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송출수수료는 급등하는데 수수료율을 낮추는 게 가당한지 의문이고 납품 업체가 체감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예를 들어 방송 매출액 1위 업체(6000억원대)의 300개 납품 업체에 수수료율을 1%포인트 낮추면 산술평균 업체당 2000만원 정도 혜택을 본다. 규제의 효과를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 외에 약자를 지원‧육성하는 실질적 정책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TV홈쇼핑의 사업 모델에 대한 도전이 만만찮다. 데이터홈쇼핑(T커머스)은 생방송 제한을, 케이블TV는 사실상 홈쇼핑과 똑같은 지역 커머스를 제한 없이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홈쇼핑의 기득권은 어려운 경쟁을 공정한 방식으로 뚫고 사업권을 받아 열심히 노력해서 쌓은 성과의 누적이다. 정부는 T커머스와 케이블TV에 숨통을 틔워주는 차원에서 생방송 허용, 지역 커머스 제도화 등을 주기적으로 만지작거린다. 절차의 공정성, 내용의 형평성을 갖추지 못한 정책‧제도 변경은 중병 걸린 홈쇼핑을 악화시키는 오처방이 될 수 있다.
 
경쟁을 제한하여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산업을 육성해서 국민경제 개선에 이바지하겠다는 규제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정책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기계적인 승인과 점검을 반복하는 규제라면 포기하는 게 옳다. 우선 재승인 관련 규제를 대폭 줄이기라도 해야 한다. 법률서적만큼 두꺼운 사업계획서를 시집 두께로 줄인다면 시장에 주는 효과는 상징적이지만 아주 강렬할 것이다.
 
홈쇼핑, 유료방송, 정부 모두 익숙하고 편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자. 홈쇼핑·유료방송은 좀 덜 주고 덜 받지만 좀 더 오래 거래할 수 있도록 대타협을 하고, 각자 생존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자.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방송산업의 새로운 판을 그리고 단기적으로 사업자 간 대타협이 가능하도록 장을 마련하고 조정을 해야 한다. 더불어 정책 목표가 해소됐거나 불분명한 규제를 풀어 사업자들을 유인해야 한다. 좋은 물건 잘 고르고 잘 팔고, 훌륭한 콘텐츠 만들어 보여주는 그런 TV홈쇼핑, 그런 유료방송 말이다. 사업자의 각성과 정부의 분발을 기대한다.



정연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 △ 한국경영학회 산업정책위원장 △ 전 한국유통학회회장 △전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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