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TSMC '원팀 협력'…"실리콘 쉴드 지킨다"

2023-10-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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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변수에 '워터 리스크'까지

위기 극복 위해 팹리스 육성에 초점

최첨단 공정은 국내로...반도체 패권 총력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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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대만 신주에서 열린 TSMC 연례 체육대회에서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대만은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20~3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대만의 반도체 제조 환경도 지금만큼 유리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 더 많은 경쟁사가 등장하며 전례 없는 큰 도전에 직면하겠지만 우리는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의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 창업자는 지난 13일 대만 신주에서 열린 TSMC 연례 체육대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향후 대만 반도체 산업이 맞닥뜨릴 위기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도 TSMC가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대만의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장 창업자의 말처럼 대만 정부와 ‘원팀’을 이룬 TSMC의 위상은 굳건할 전망이다. 즉, 대만이 ‘실리콘 쉴드(방패)’를 지켜낼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대만이 싸우지도 않고 방패를 내려놓는 일은 없을 것(Taiwan won’t give up its shield without a fight)”이라고 말했다.
 
◆공급망 변수에 ‘워터 리스크’까지
시장조사업체 IDC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세계 반도체 지형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대만의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이 올해 46%에서 2027년 43%, OSAT(반도체 외주패키징) 점유율은 지난해 51%에서 2027년 47%로 각각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세계 각국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대만 플러스 1’ 생산 계획 등을 채택해 대만의 점유율이 감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워터 리스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TSMC의 현지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이 물 부족을 우려한 주민 반발에 부딪히면서 차질을 빚고 있는 것. 16일 타이바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TSMC의 타오위안 룽탄 과학단지 1㎚(나노미터·10억분의1m) 공장 증설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 정부는 올해 초부터 TSMC가 해당 지역에서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재생수 공장을 신설하는 등 발 벗고 나섰으나 물 부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을 잠재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산업은 대량의 수자원과 전력을 필요로 하는 ‘자원집약적 산업’으로,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면 인근 농장 등은 농업용수나 전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승인된 것으로 알려진 대만 중부 타이중의 세 번째 공장 건설 역시 물 부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을 겪어야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공장 중 하나를 향해 ‘님비(NIMBY, 위험·혐오시설 등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행위)’를 외치는 건 쉽지 않다”며 “그런데도 타이중 주민들은 이를 시도했다”고 짚었다.
 
◆향후 10년 반도체 계획...팹리스 육성에 초점
사실 대만 반도체가 직면한 워터 리스크는 2021년 대만이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을 때 대두된 바 있다. 당시 대만 내에서도 “대만은 지진·가뭄 등 자연재해가 많아 TSMC가 공장을 해외로 돌릴 것”이라는 ‘탈대만’ 위기론이 불거졌지만 대만 정부가 직접 나서 TSMC 공장 인근 농민들을 설득했고, 논으로 들어가는 물길을 막아 TSMC 공장으로 돌리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이처럼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 성장을 대만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대 국정 과제로 여기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만이 ‘반도체 패권’을 지켜낼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대만은 반도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 상승을 지속적으로 억제하고 있으며, 반도체 기업에 물과 에너지 보조금도 지급한다. 류더인(劉德音) TSMC 회장이 대만 고속철도 노선이 반도체 기술자들의 생산기지 이동 동선을 고려해 설계되었다고 언급할 정도다. 또한 대만 행정원은 ‘2030년 1나노 공정 진입’을 6대 핵심 국가 전략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TSMC의 미세 공정 기술까지 챙기는 셈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대만 정부가 AMD,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대만 경제부는 저성능 반도체를 설계하는 중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2500만 달러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달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는 2033년까지 팹리스 시장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10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정부 승인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첫해에만 예산 120억 대만달러(약 5020억원)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대만은 파운드리 시장에선 입지가 확고하지만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미국이 68%로 독보적이다. 대만은 21%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대만의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은 세계 5위 미디어텍이다. 대만이 팹리스 시장 강화에 나선 건 팹리스가 강하면 파운드리는 자연스럽게 튼튼해지고, 반도체 생태계의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어서다.
 
우정중(吳政忠) NSTC 주임위원은 지난 8월 “대만을 반도체 설계 중심지로 구축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며 “팹리스 시장 점유율 40%, 7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시장 점유율 80% 달성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첨단 공정은 국내로...‘실리콘 쉴드’ 총력 사수 
반도체 산업의 대만 경제 기여도는 3분의1에 달한다. 하지만 대만 정부가 이토록 반도체 패권 지키기에 사활을 거는 데에는 경제적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대만을 보호하는, 이른바 '실리콘 쉴드' 역할을 하기 때문도 크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60% 이상, 특히 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한다. 미국의 애플·엔비디아·퀄컴 등은 물론 다수의 중국 정보통신(IT), 반도체 기업들 역시 TSMC 대만 공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만약 대만 반도체 공장들이 가동 불가 상태가 된다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전자 제품 제조사들의 생산이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대만 반도체에 대한 글로벌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아주고, 중국 역시 대만을 쉽게 침공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는 대만이 중국과의 갈등으로 외교무대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음에도 주요국 대우를 받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정학적 리스크에 손 놓고 있지만은 않다. TSMC는 그동안 대만에만 운영하던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공장을 여러 국가로 분산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1공장과 최근 건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구마모토현 2공장에서는 각각 12㎚, 6㎚ 공정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현지 숙련 인력 부족 등 문제로 가동이 2025년으로 연기된 미국 애리조나 공장은 4㎚, 독일 드레스덴의 100억 유로 규모 공장은 10㎚ 공정이다. 다만 3㎚ 이하 초첨단 공정은 대만 안에 둬 실리콘 쉴드를 지킨다는 전략이다.

특히 중국 견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만 정부는 중국 유출금지 핵심기술 목록을 연내 발표할 예정이다. TSMC도 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대만경제연구원의 류페이전(劉佩真) 연구원은 “TSMC의 대중국 대규모 투자는 2021년 28억8700대만달러를 투입한 난징 28㎚ 공정 공장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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