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당국이 삼성전자에 이른바 '갑질'을 한 혐의를 받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에게 200억원을 밑도는 과징금 결정을 내렸다. 이는 브로드컴이 상생기금 조성 명목으로 약속한 금액에는 못 미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위법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정위는 21일 브로드컴이 부품 선적 중단 등 불공정한 수단을 통해 삼성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부품 공급에 관한 장기계약(LTA) 체결을 강제해 불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브로드컴은 200억원 규모의 상생기금 조성 및 삼성전자에 대한 기술 지원 등의 자진 시정안을 담은 거래상 지위 남용 건과 관련한 동의의결안을 제출했는데 공정위는 지난 6월 이를 최종 기각했다. 브로드컴이 내놓은 시정방안으로는 충분한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과징금 처분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따른 것으로 위반 기간, 관련 매출액, 부과율 등에 따라서 결정됐다. 당국은 관련 매출액에 따른 부과기준율 상한인 2%를 적용해 엄정한 처벌을 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과징금은 브로드컴의 상생기금보다 낮은 수준이라 공정위 제재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이 강요한 장기계약으로 입은 피해금액 3억2630만 달러(약 4337억원)와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일각에서는 처벌 필요성이 명확하다면 공정위가 애초에 브로드컴의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동의의결과 정식 사건 처리는 취지나 효과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생기금과 과징금 처분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사건 처리를 통해 위법행위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동의의결과는 다른 방향의 처분이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브로드컴은 추후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의결은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필요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판결을 거쳐 확정된다.
삼성전자 역시 브로드컴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설 것으로 전망돼 향후 법정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