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골프장 속으로] ⑤ 100년 역사 품은 런던 골프장, 웬트워스

2023-09-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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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컵이 태어난 곳

BMW PGA 챔피언십 개최지

'성' 클럽하우스·코끼리 캐디 등도

웬트워스 골프 코스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는 처음에 성으로 지어졌다 사진웬트워스 골프 코스
웬트워스 골프 코스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는 처음에 성으로 지어졌다. [사진=웬트워스 골프 코스]
지난달 AIG 위민스 오픈이 열린 영국 잉글랜드 서리의 월터 히스에서 런던 히스로 공항 방향으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다가 한 골목으로 빠지면 웬트워스 골프 코스(이하 웬트워스)가 나온다.

골프장 초입부터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사들이 부지런히 관리한다. 영국 골프장 느낌이 아니다. 영국에 산재한 유적지로 향하는 기분이다. 

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 보면 드라이빙 레인지와 코스가 펼쳐진다. 더 가속 페달을 밟으면 클럽하우스가 등장한다.

이 역시도 낯설다. 클럽하우스라기보다 '성'에 가깝다. 맞다. 건축가의 첫 의도는 성이었다. 제1대 웰링턴 공작의 처남이 처음 거주했다. 이후 사령관, 백작, 후작 등이 소유했다. 

후작이 죽자 그의 아내는 주변 땅을 사들였다. 그러고는 1922년부터 골프장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는 해리 콜트가 맡았다. 동시에 주변 땅에 집들을 지었다. 이 부동산의 이름은 웬트워스 에스테이트. 런던 외곽에서 가장 비싼 땅 중 하나다.
 
웬트워스 골프 코스 내에 DP 월드 투어 본사가 자리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웬트워스 골프 코스 내에 DP 월드 투어 본사가 자리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백을 내리고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는 길에 한 집이 있다. 바로 DP 월드(전 유러피언) 투어 본사. 입구에는 각 투어 로고가 붙어 있다.

웬트워스에는 4가지 코스가 있다. 3개의 18홀(서·동·에든버러 코스)과 1개의 9홀(이그제큐티브 코스)이다.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은 동 코스로 1924년이다. 서 코스는 2년 뒤에 지어졌다. 에든버러 코스는 최근인 1990년이다.

프로숍에서 코스를 에든버러로 변경했다. 서 코스를 예약했으나, 대회(BMW PGA 챔피언십) 개최로 모든 티 타임을 취소했다. 대신 클럽 프로인 게리를 붙여줬다. 가이드 겸 동반자로 말이다.
 
웬트워스 골프클럽 에든버러 코스에는 작은 번이 곳곳에 위치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웬트워스 골프클럽 에든버러 코스에는 작은 번과 포트 벙커가 곳곳에 위치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서 코스 공사 소리를 뒤로 하고 에든버러 코스로 향했다. 레이아웃은 영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링크스(해안) 코스, 히스 랜드(내륙) 코스와는 다르다. 오히려 한국 같은 느낌이다. 산 속에 위치했다. 높게 솟은 나무, 부드러운 잔디, 숨어있는 그린이 골퍼를 맞이한다.

그렇다고 영국의 특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작은 번과 포트 벙커가 그린 주변에 위치했다.  공이 그린에서 이탈하면 번이나 벙커에 빠지기 일쑤다. 프랑스 프로골퍼인 장 방드 밸드의 몰락으로 유명한 카누스티 배리 번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러프 곳곳에는 헤더(Header)가 자리했다. 헤더는 보라색 야생화다. 공이 헤더 속으로 숨으면 찾거나 꺼내기 쉽지 않다.

1번 홀 스타트 하우스에 웬트워스 로고가 박힌 디보트 툴(그린 보수기)이 비치됐다. 직원은 "마음껏 가져가셔도 된다"고 말했지만 단 하나만을 집었다.

게리의 티샷에 이어 티샷을 했다. 역시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공이 떨어진 곳으로 향하며 웬트워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골프장에서는 HSBC 월드 매치플레이, BMW PGA 챔피언십, 라이더컵, 월드컵, 커티스 컵 등이 개최됐다.

우승컵을 든 유명 선수로는 남아공의 게리 플레이어와 어니엘스, 스페인의 세베 바예스테로스, 잉글랜드의 닉 팔도, 스코틀랜드의 콜린 몽고메리,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 안병훈 등이 있다.

동반자 게리에게 고향이 어딘지를 물으니 "남아공"이라고 답했다. "이름이 같다"는 말에는 "맞아. 플레이어와 같지"라고 답했다. 게리에 따르면 다른 남아공 선수인 엘스도 웬트워스 에스테이트에서 살고 있다.
 
웨트워스 골프 코스는 한국 코스와 레이아웃이 비슷하다 사진웬트워스 골프 코스
웬트워스 골프 코스는 한국 코스와 레이아웃이 비슷하다. [사진=웬트워스 골프 코스]
라운드를 이었다. 에든버러 코스 설계자는 존 제이컵스다. 게리 플레이어와 버나드 갈라허의 조언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 특유의 느낌은 아니지만 곳곳에 상징을 숨겨놨다. 번, 포트 벙커, 헤더를 피해서 공을 날렸다.

9홀을 도니 작은 그늘집이 나왔다. 게리는 소시지 빵을 주문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AIG 위민스 오픈에 출전한 고진영이 언급할 만했다. 차례를 기다리던 앞 조 골퍼들도 소시지 빵을 권했다. 한 입 베어 무니 느끼하지만 소시지의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후반 9홀은 그린 전까지 한국보다는 일본의 느낌이 강했다. 길쭉하고 좁은 페어웨이, 공략하기 까다로운 그린, 심한 언듈레이션 등이다. 게리는 나무를 앞에 둔 트러블 샷 상황에서 그린을 바로 공략했다.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선보인 버바 웟슨과 필 미컬슨의 샷을 연상케 했다.
 
1926년 라이더 컵 탄생을 그린 그림이 웬트워스 골프 코스 클럽하우스에 걸려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1926년 '라이더 컵 탄생'을 그린 그림이 웬트워스 골프 코스 클럽하우스에 걸려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18홀을 돌고 게리에게 가이드 팁을 줬다. 웬트워스의 101년 역사를 고스란히 설명해 준 비용이다. 이후 클럽하우스 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함께 방문한 사람 중 한 명은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보다 좋다"고 평했다.

이후 클럽하우스를 둘러봤다. 레스토랑을 나서자마자 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1926년 티잉 구역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 속에는 33명의 사람이 있다. 왼쪽에 붙은 설명서에는 각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익숙한 이름으로는 테드 레이, 월터 헤이건, 짐 번스, 해리 바든, 사무엘 라이더, 샌디 허드, 조지 타란트, 헨리 코튼, 토미 아머, 코트 등이다.

이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국가대항전을 위해서다. 당시에는 디 오픈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미국과 영국 선수들이 대결을 펼쳤다. 웬트워스 입구에는 "라이더 컵이 태어난 곳"이라는 문구가 있다. 1년 뒤 라이더의 지원 아래 태어난 대회가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라이더 컵이다. 라이더 컵은 웬트워스에서 1번 개최됐다. 바로 1953년이다. 라이더 컵은 1973년 미국과 GB&I(영국+아일랜드)가 대결을 벌이다가, 1979년부터 미국과 유럽의 대결로 변경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클럽하우스 곳곳에는 100년의 역사가 숨어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1964년 촬영된 흑백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사람들과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다. 코끼리 캐디다. 어설프게 손 카트 손잡이에 코끼리 끈을 묶었지만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코끼리 캐디는 정규직이 아니다. 계약직이었다. 당시 카 마트 컴퍼니의 행사에 등장했다.

오는 14일(현지시간)부터 17일까지 나흘간은 이곳에서 PGA BMW 챔피언십이 개최된다. 출전 명단에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주 무대로 뛰는 김주형이 포함됐다.
 
1964년 프로암 행사에 참가한 코끼리가 백을 메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1964년 프로암 행사에 참여한 코끼리가 백을 메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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