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한국과 중국 간 무역 관계는 오히려 20년 전으로 회귀했다. 중국에 대한 한국 수출 비중이 대폭 줄어든 지금 한·중 관계가 더 악화한다면 중국은 한국에 대한 수입 통제를 넘어 핵심 광물과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를 보복 수단으로 쓸 가능성이 크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중 금융산업 포럼’에 발표자로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거세지고 있는 ‘탈(脫)중국’ 요구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는 지난 4월 기준 19.1%까지 하락해 대미 의존도(18.5%)와 격차가 0.6%포인트밖에 나지 않는다. 이는 대만(25.2%), 호주 (24.8%), 일본(19.3%)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 소장은 “현 상황에서 더 낮출 만한 대중 의존도가 없다”며 “탈중국이 말은 쉽지만 정교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시도하게 되면 고통은 배가되고 실익은 잃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중국 간 대치 국면이 심화한 이후 형성된 ‘중국 기피 현상’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공급망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양국 중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은 대만과 한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에 발목을 잡혔고 대만과 한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은 네덜란드 노광장비(EUV)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술과 공장, 장비가 갖춰져 있어도 공정에 필요한 소재나 웨이퍼 제작을 위한 기초소재 중 하나만 배제돼도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어려워졌다.
전 소장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에는 기술이 갑(甲), 자원이 을(乙)이었지만 미·중이 기술전쟁, 공급망전쟁, 경제안보전쟁으로 전쟁터를 바꾸면서 자원이 갑, 기술이 을인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한국은 미·중 기술전쟁과 자원전쟁에서 깊은 통찰력과 혜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젊은 인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과거 자동차, 휴대폰, 전기차, 반도체 최대 시장은 미국이었으나 지금은 중국”이라며 “한국의 대중 적자를 흑자로 반전시킬 전략이나 노력 없이 끝났다는 말만 하고 있으면 진정 끝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 소장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국 현지 교민과 주재원 중 90%가 사라졌다고 추산했다. 결국 나머지 인력 10%를 철저히 현지화해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 소장의 시각이다. 중국 유학 등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코로나 3년간 한국에 온 중국 유학생은 2020년 6만7030명에서 2022년 6만7439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중국으로 간 한국 유학생은 4만7146명에서 1만6968명으로 64%가량 급감했다.
전 소장은 “중국어가 안 되는 주재원과 외교관은 과감하게 철수시키고 대안이 없으면 중국에서 공부한 젊은 인재들로 교체해야 한다”며 “중국에서 초·중·고교와 명문 대학을 나온 중국 유학생들은 사업 상대방인 중국인들과 중국어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학연을 통한 관시(關係)로 영업도 외교도 가능한 인재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