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시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린 최재형 선생이 부인 최 엘레나 여사와의 현충원 합장을 위해 103년 만에 동해항을 통해 귀국한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1일 최재형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 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모셔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골 및 시신을 안장하도록 한 ‘국립묘지법’ 규정에 따라 최 선생의 묘는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으나 정부에서 유골 및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 유골을 합장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법 개정을 추진, 지난 달 18일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그 첫 사례로 최 선생 부부의 묘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 선생 부부의 현충원 합장식은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는 14일 진행될 예정으로, 지난 7일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온 최 여사의 유해에 이어 최 선생이 순국한 장소의 흙을 11일 이스턴드림호를 통해 들여오게 된다.
한편, 최재형 선생은 지난 1860년 함경도의 가난한 소작농의 차남으로 태어나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 후 생전에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썼다. 최 선생은 러일전쟁 후 ‘동의회’를 조직해 항일 의병투쟁을 펼쳤고,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 참여한 독립군들에게 무기를 제공한 것도 최 선생이다.
최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동포신문 ‘대동공보’가 재정난으로 폐간하자 이를 인수, 재창간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추앙받았다.
부인 최 여사는 최 선생과 결혼한 이후 8명의 자녀를 두고 최 선생의 독립운동을 내조했으며, 안 의사 순국 뒤엔 그의 남은 가족들을 보살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최 여사는 최 선생 순국 뒤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숨을 거뒀다.
북방물류산업진흥원 최호영 원장은 “이번에 들어오는 것은 최 선생이 순국한 장소의 단순한 흙이 아니라 최 선생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최 선생의 영혼 그 자체”며, “운송비를 전액 지원한 두원상선 뿐만 아니라 동해시민 전체가 최 선생의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선생 부부의 영면을 소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