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원칙˙상식

[기원상의 팩트체크] OECD 기름값 최하위 한국...정유업계 '폭리' 유언비어는 누가 만들었나

2023-07-22 05:00
  • 글자크기 설정
정유업계는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공공의 적이 된다. 국민이 느끼는 물가 인상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로도 언급되는 주유소 기름값은 국제유가가 변동될 때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곤 한다. 국제유가가 내렸는데 기름값은 그대로라는 비판이 대부분이다.

정유사들이 높은 영업이익을 달성하면 정치권에서는 여·야 구분 없이 정유업계가 폭리를 취한다며 ‘횡재세’를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유업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오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엄청날 것이라고 예상된 영업이익률은 지난 16년간 제조업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수조원의 영업이익은 상당 부분이 재고손익에 따른 것이며, 벌어들이는 현금도 70%는 수출에서 발생한다. 비싸게만 느껴지는 기름값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OECD 23개국 중 가장 기름값이 싼 한국...오해 속 악덕상인으로 전락

2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국내 고급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879.95원으로 석유공사가 조사한 OECD 23개국 중 두 번째로 낮은 가격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역시 리터당 1467.72원으로 같은 순위다.

한국보다 낮은 순위는 최근 초엔저 시황을 보이고 있는 일본 뿐이다. 일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사실상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기름값을 자랑한다. 유류세가 높은 것도 아니다.

2분기 기준 고급휘발유에 대한 세금은 한국이 리터당 766.26원으로 캐나다(515.65원), 일본(670.50원)에 이어 세 번째로 낮다. 유럽의 주요 국가인 프랑스(1439.53원), 독일(1455.82원) 등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주유소 기름값 자체에 보조금을 주는 중동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기름값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정유산업은 낮은 가격에 팔아도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정유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8%다. 같은 기간 국내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6.5%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약 14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지난해와 약 7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2021년은 수출과 재고손익이 크게 작용했다.

먼저 국제유가가 엄청난 폭의 변화를 보였다. 정유 4사가 5조 원의 적자를 기록한 2020년, 국내 정유사들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의 가격은 배럴당 42.29달러였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69.41달러로 뛰었으며, 지난해에는 96.41달러를 기록했다. 당장 정유사들이 미리 사들인 석유의 가치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한 셈이다.

수출단가는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2020년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수출단가는 배럴당 평균 48.88달러였다. 2021년에는 2배 가까운 80.43달러까지 뛰었으며, 지난해에는 123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국내 주유소 보통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381.39원에서 1812.79원으로 31.2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실제 정유업계에 따르면 수익의 약 70%가 수출에서 났으며, 국내에서는 정부의 권고 등에 따라 유가 인상분보다는 낮은 가격을 적용했다.

국제유가가 낮아짐에도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폭리를 취해 기름값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살펴봤다.

최근 3년간 두바이유 기준 월평균 가격이 가장 높았던 달은 지난해 6월로 배럴당 113.27달러였다. 이후 국제유가는 점차 낮아져 지난해 11월에는 90달러선이 붕괴한 86.26달러를 기록했다. 5개월 동안 23.85%가 낮아진 셈이다.

이 기간 국내 주유소 보통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84원에서 1650.32원으로 20.8% 내렸다. 금액이 고정된 유류세와 환율을 고려하면 하락폭은 국제 유가 하락폭의 2배 수준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석유를 수입할 때 결제수단은 대부분 달러화다. 지난해 6월 2일 원·달러 환율은 1250.5원이었으나 11월 1일에는 1421원까지 올랐다. 정유사들이 원재료인 석유를 사들이는 비용이 증가하면서 국제유가 하락이 상쇄됐음에도 국내 주유소 공급가는 낮아졌다. 

국제유가가 즉시 주유소 가격에 연동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흔히 접하는 국제유가 지표인 서부텍사스원유(WTI). 브렌트유의 공시가격은 선물시장 공시 가격이며, 현물 가격도 국내에 도입되는 시기가 약 3주가량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기름값은 국제유가의 변동이 착실하다 못해 지난해만 보면 하락에 있어서는 보다 큰 폭으로 적용됐다.
◆2008년부터 '공공의 적'이 된 정유업계...정치권 선전도구 신세

정유업계가 정유산업이 공공의 적이 된 것이 2008년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이었던 2001년~2003년 국내 주유소 보통휘발유 가격도 리터당 1200원 선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2004년부터 본격화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장이 글로벌 석유수요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석유수요 증가로 인해 국제유가는 매년 배럴당 10달러씩 올랐으며, 미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국내 주유소 기름값도 치솟았는데 2008년 6월에는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906.8원을 기록했으며, 곳곳에서 2000원이 넘는 휘발유 가격도 볼 수 있었다.
 
미국의 금융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기 악화와 겹쳐 기름값은 심리적 한계선인 2000원을 기록하면서 주유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게 주유소 업계의 설명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당해 대통령선거와 겹쳐 정치권의 선전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으로 유류세 인하를 내놓기도 했다.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며 만들어 낸 알뜰주유소가 일반 주유소보다 낮은 가격에 기름을 판매한 것을 계기로 정유업계와 주유소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의혹은 국민에게 절대적 사실로 인식됐다. 이 기간 값이 싼 가짜 석유 사건이 다수 발생한 것도 여론 악화에 큰 몫을 했다.
 
한국은 석유가 전혀 나지 않는 국가임에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정유산업 국가다. 올해부터는 반도체, 자동차와 함께 3대 수출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명실상부 국내에서 외화를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산업이기도 하다.
 
다만 여전히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외화벌이에 힘쓰는 정유업계는 공공의 적이 된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평균 120여 개의 주유소가 폐업하고 있다. 2040년에는 전체 주유소의 80%가 폐업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정유업계와 주유소가 폭리를 취하고, ‘횡재’를 하는 사업이라면 주유소가 문을 닫을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GS칼텍스
[사진=GS칼텍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