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달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방중을 시작으로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 고위 관리들이 연이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 국무장관으로서는 5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하고 양국 간 각종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옐런 장관 역시 미·중 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부각시키며 양국 간 긴장 완화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이들의 방문에서 이렇다 할 가시적인 결과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양측 모두 자신들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이견을 좁히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대화에 물꼬를 튼 것은 충분히 긍정적인 일이다. 중국 역시 대화와 소통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서방국가들 역시 다시 중국과의 대화에 나서고 있다. 석탄 금수 조치 등으로 관계가 경색됐던 호주는 통상장관이 4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무역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고, 일본에서는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이 대기업 임원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민간 재계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등과 회동했다. 4월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에어버스 등 60여 개 기업 임원들을 대동하고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함께 중국을 찾았다.
이들 방문단의 면면을 보면 한동안 거리를 두었던 서방국가들이 다시 중국을 찾는 이유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중국과의 긴장을 완화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경제적 요인이다. 이는 5월 열린 주요 7개국(G7) 공동선언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G7은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는 중국과 협력할 의사를 내비치면서도 안보적 측면에 있어서는 중국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투 트랙 노선, 곧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전략을 분명히 했다. 중국과 관계를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종래 '디커플링(탈동조화)' 기조와 달리 경제적으로 득이 되는 부분은 중국과 기꺼이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 트랙 노선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부분이기도 하다. 친서방 노선을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 들어 그 힘이 다소 약화하기는 했지만 지난 30년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기조가 상당 부분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구상 대부분 국가들이 일정 부분은 '경중(經中)'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경제 영역에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조차 중국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데 다른 국가들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 더욱이 중국 바로 옆에 있는 우리는 좋든 싫든 직간접적으로 중국의 경제적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디리스킹' 전략을 강력 주장한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올해 중국 방문에 앞선 연설에서 "중국과 디커플링이 가능하다고도, 유럽에 이익이 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며 "우리 관계는 흑도 백도 아니다. 우리의 대답은 그 둘 중 아무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안보와 이념적으로는 서방에 가깝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도 상당 부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이전처럼 대중국 수출이 호황을 이루던 시기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등은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안보적 요인으로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다분하다. 산업구조상 이미 경쟁 구도로 들어선 분야도 많다.
그럼에도 경제적 논리와 실사구시적 시각에 입각해 중국과 대화를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이 중국과 대화를 재개하는 상황이니만큼 명분은 충분하다. 경제성장 동력이 약화된 중국은 시진핑 주석까지 대외 개방을 외치며 외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 역시 수출이 연일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러모로 한·중 관계 개선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