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오전 통화정책회의 정례회의를 열고, 금통위 6명 만장일치로 현재의 3.5%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오름세가 둔화했지만, 내달부터 재차 3% 내외로 올라서는 등 상당기간 목표(2%) 수준을 상회할 것"이라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기로 했다. 향후 물가 목표(2%) 수렴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외환·부채 흐름을 지켜보면서 상당기간 긴축 기조를 이어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금리 동결 결정은 업계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다. 물가가 안정적인 하향 흐름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경상수지·무역수지도 개선돼 경기 침체 우려를 누그러뜨렸다. 여기에 간밤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예상치를 밑돌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가 약화된 점도 금통위의 부담을 덜어줬다.
한은은 네 차례 금리를 동결했지만, 향후 한은의 금리 결정에는 인상·인하 요인이 더욱 복잡하게 얽힐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일본 노무라 증권 역시 최근 보고에서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연준보다 일찍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라는 물가보다 경기 침체가 더욱 심각한 아시아에서는 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과 한국이 금리인하 압력에 가장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빠르면 오는 10월 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뒤 올해 안으로 한 번 더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미 간 금리차는 현재 1.75%포인트로, 2000년 10월 1.5%포인트 이후 역대 최대 격차로 벌어졌다. 미국 내 물가 오름세가 둔화하고 있지만, 연준은 여전히 긴축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내달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은 금리를 인상할 것이 유력해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내외금리차는 2%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이는 23년 만에 사상 최대 수준으로, 자금유출 압력이 확대될 공산이 크다.
이미 사상 최대 수준에서도 외환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면서 자금유출·원화약세 등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연준의 '피벗'(정책 전환)이 드러나기 전까지 섣불리 금리를 인하하지 말아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가 멈췄다는 분명한 신호가 있기 전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 "9월 (미국 금리의) 동결이 예상된다고 하지만 이는 시장의 기대일 뿐,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경제도 회복세를 보인다고는 하나,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가계부채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전월 말 대비 증가폭으로는 5조900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 역시 1년 9개월 만에 기록한 최대 증가폭이다. 이 총재는 이날 여러 금통위원이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고 전했다. 한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 수준까지 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올해 비율은 103%를 기록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은 부채 족쇄에 따른 별수 없는 선택지"라면서 "고통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그간 뿌려놓은 부채가 워낙 크다보니 한국 사회가 저금리 시대가 마무리됐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원화 가치가 계속 절하되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금리 수준을 높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무리하게 빚을 일으켜 돈을 벌고, 리스크를 활용했던 개인·회사들은 부채 구조조정의 부담을 져야 한다"면서 "연착륙을 위해 빚내서 빚을 갚게 만드는 것은 더 큰 고통을 사회 전체에 전가하는 꼴이다. 대외적으로 선진국과 비교해 금리가 높은지, 실질금리 수준이 과거와 비교해 과도하게 높은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