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표류하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보며

2023-05-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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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만 건설부동산부 부장



2인3각 달리기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로의 한쪽 다리를 묶어 달리는 경기 말이다. 쉽게 보이지만, 막상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로 호흡이 맞으면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방향이나 박자가 어긋나면 발이 꼬여 걷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자칫 넘어지기 일쑤다. 

국정 운영이야 말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2인 3각 경주라고 할 수 있다. 민생 안정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물과 기름 같은 여야는 물론이고,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행정·입법·사법부, 각 부처, 지자체 등이 함께 발을 맞춰 달려야 하는 마라톤인 셈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삐걱대고 있다. 여야의 입장 차로 소관 상임위인 국회 국토교통위 소위원회에서 표류하면서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전세사기 행각이 드러난 이후 정부는 수차례 대책을 발표하며 전세사기 예방 및 처벌 강화, 피해자 지원 등 방안을 내놓았지만, 실질적인 구제가 더뎌지면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최근 잇달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바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특별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 지원에 나서기로 했지만, 이번엔 여야간 피해자 범위와 구제 방식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며 당초 지난주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특별법 처리가 불발됐다. 법안소위에서는 6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전세 사기 피해자 요건과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 여부 등 쟁점 사안을 둘러싼 여야 간 간극이 재확인됐다. 

특히 야당과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先)지원·후(後) 구상권 행사'를 둘러싸고 난관이 예상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 매입 기관이 먼저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들이고, 추후 구상권 행사를 통해 비용을 보전하자는 방안인데,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채권 매입을 할 경우 보이스피싱 등 다른 사기 피해와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역시 피해자에 대한 보증금 직접 지원은 불가하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히며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국토위 법안소위 논의가 전혀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다. 피해자 인정 요건이 까다롭다는 야당과 피해자대책위의 입장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면서다. 국토부는 특별법 수정안에서 피해지원대상 주택의 면적 요건을 삭제하고 보증금 상당액 손실 규정도 삭제하면서 인정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법무부 역시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의 '무자본 갭투자'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임차인, 즉 '깡통전세' 피해자까지 특별법 적용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불안케 하는 전세사기에 대한 대책은 정쟁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와 여당, 야당이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의 입장만 평행선처럼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닌, 발이 어긋나지 않도록 소통을 통해 '하나둘 하나둘' 구령을 붙여주고, 서로의 나아갈 방향을 조정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함께 잘못을 저지른 임대인과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수의 선량한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까지 '악성 임대인'이나 '잠재적인 사기꾼'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들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후속 대책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택 임대차 제도인 전세 제도에서 임대인, 임차인, 그리고 공인중개사 모두 호흡을 맞춰야 하는 플레이어이고, 이들 모두 이번 전세사기의 직간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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