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없는 사회는 일한 만큼 보상받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지향점이며 노동시장 약자 보호라는 노동개혁의 초석입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일 상습체불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노동개혁'을 언급했다. 윤석열 정부 3대 개혁 중 하나인 노동개혁은 이 장관 취임 1년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다.
'중재자' 전문성 빛난 대우조선 협상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이 장관을 둘러싼 여러 우려를 단번에 씻어줬다. 지난해 7월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이 노사 간 협상 타결로 마무리됐다. 원하청 간 임금 차이로 촉발된 파업 돌입 51일 만이다. 당시 정부는 공권력 투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을 만큼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극적 타결을 이끈 건 이 장관이다. 이 장관은 같은 달 19일과 20일 연이어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찾아 노사 중재자 역할을 했다.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옥포조선소를 찾았던 20일엔 노사 양측을 만나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서로 양보해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며 "정부도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득했다.
이 장관은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임금을 비롯한 원하청 이중구조 개선에 속도를 냈다. 지난 2월 27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조선 5사 원청업체와 협력업체 대표들이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을 맺었다. 이 자리에는 이 장관도 함께했다.
친정에도 칼날···노조 회계투명화 강화
노동개혁 주요 과제인 '노사 법치주의'도 강도 높게 추진 중이다. 이 일환으로 고용부는 지난 2월 노조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조합원 1000명 이상인 334곳에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달 21일엔 끝내 자료 제출을 거부한 노조를 대상으로 현장 행정조사에 나섰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이 장관 친정인 한국노총 본부도 속해 있었다.
회계 자료를 내지 않은 노조에 대한 지원도 단호히 끊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에 따르면 고용부의 노조 지원 규모는 지난해 35억1000만원에서 올해 8억3000만원으로 77%가량 줄었다. 회계가 불투명한 노조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탈락 노조에는 해마다 26억원을 지원받아 온 한국노총도 포함됐다.
중대재해 감축·상습체불 철폐 속도
이 장관은 경영계 불법 행위에도 엄격하다. 지난달 20일엔 "정부는 노조 회계 불투명성과 사측 부당 노동행위 등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법을 집행해 현장에 특권과 반칙이 발을 못 붙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중대재해로 근로자 2명이 숨진 세아베스틸에서 올 3월에도 중대재해로 2명이 목숨을 잃자 "작년 사고를 반면교사 삼지 못해 사고가 재발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원점에서 다시 설계하라"고 주문했다.
상습체불 근절도 추진 중이다. 이 장관은 지난 3일 국민의힘과 노동정책 당정 간담회를 갖고 임금체불을 일삼는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정은 형사처벌뿐 아니라 경제적 제재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MZ도 반대···갈길 먼 근로시간 개편
근로시간 유연화는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자 시절부터 강조해 온 노동개혁 핵심 사안이다. 고용부 역시 가장 속도를 내왔다. 이 장관은 지난 3월 주 단위 연장근로를 '월·반기·분기·연'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개편안은 곧바로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이론상 1주차에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진 탓이다. 노동계에선 '과로사 조장법'이란 비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우군으로 생각하던 MZ노조도 등을 돌렸다.
국민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자 정부는 한발 물러났다. 이 장관은 입법예고 마지막 날인 지난달 17일 "5월부터 두 달간 집중적으로 근로시간 개편에 대해 의견수렴을 하겠다"며 전면 재검토를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