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칼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커지는 불안 …우리의 선택은

2023-05-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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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승 교수]



기업 간에 원료나 중간재 혹은 완제품을 이동시켜 최종 구매자까지 전달하는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SCM)는 그동안 개별 기업 차원의 이슈였으며,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공급망 교란은 대부분 시장 기능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그러나 최근 팬데믹, 자연재해,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교란 범위가 글로벌 수준으로 확산되고, 주요국의 공급망 전략자산화에 따른 ‘의도된 단절’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이제 특정 산업·품목의 공급망 문제는 개별 기업의 대응 역량과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특히, 국가적으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필수재화나 전략물자에 대한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산업경쟁력 유지, 사회 안정, 외교안보 이슈와 직결되면서 공급망 충격에 대한 대응 체계 및 회복력(resilience) 확보는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적 어젠다가 되고 있다. 실제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산업에 필수적 역할을 하는 핵심 소부장이 국가의 전략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산업화 이후 우리가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의 첨단 소부장 의존이 산업안보 차원에서 전략적 레버리지 상실로 이어짐을 자각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공급망 불확실 요인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충격이 발생했을 때 조기에 회복시키는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특히 소재·부품 등 중간재 교역 비중이 높은 우리 산업에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공급망 충격에 대한 단기 수급 대책을 넘어 향후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 그리고 새롭게 형성되는 질서에 대응키 위한 근본적 방안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의 주요 원인은 자연재해, 탄소중립, 미·중 패권경쟁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팬데믹, 지진,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 일시적 혹은 중기적 공급망 장애가 종종 발생한다. 탄소중립 확산은 석탄 등 탄소에 기반한 전통적 공급망의 퇴조를 촉진시킨다. 미·중 패권경쟁은 첨단 전략 기술·산업의 확보를 위한 강대국의 전략적 고려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현상을 말한다. 최근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미국의 공급망 진영화 재편 움직임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중 탄소중립과 미·중 패권경쟁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며, 특히 미·중 패권경쟁은 ‘경제안보’ 측면에서의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 탄소중립,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그리고 각국의 경쟁적인 공급망 전략자산화 흐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충격과 구조 변화는 다분히 ‘의도된’ 변화이며, 통상적 시장 기능을 통해 해소되는 수준을 벗어난다. 따라서 이는 ‘시장’의 시각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 ‘경제안보’ 시각의 대응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한국은 그동안 다른 어느 나라보다 탄소집약적 산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글로벌 최상위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적극적이며 과감한 해외 진출로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최대 수요시장이자 글로벌 생산 거점인 중국과 효율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다른 나라가 확보하지 못한 경쟁력 있는 수급 체계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강점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산업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촉진하는 모든 요인이 결국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현 글로벌 공급망 체계의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SGI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전기 및 광학기기 부문(컴퓨터, 반도체, 전기차 부품 등 포함)에서 전방참여율이 57%로 주요 선진국 G20 중 가장 높고, 글로벌 수출 상위 20위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전방참여율은 국내 수출품이 수출 상대국의 중간재로 사용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수출을 통한 공급망 참여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재편이 지속되면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IT 등 첨단IT산업의 공급망이 장기적으로 이 두 나라 중심으로 이원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문제는 한국의 수출구조가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 맞춰져 있어 향후 공급망 재편 양상에 따라 큰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중 간 분업구조의 고도화가 한·중 산업 발전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나, 높아진 수급 집중도, 특히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중간재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공급망 리스크의 핵심 근원이 되고 있다.
 
최근 4~5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원인의 공급망 충격을 겪어왔으며, 지금의 불안정한 흐름이 특정국과의 일시적 갈등 혹은 팬데믹에 따른 일회성 현상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산업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기조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는 장단기 정책 설계를 통해 현 상황을 안정시키면서도 중장기 글로벌 산업 질서 재편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면, 주요국들은 반도체 관련 글로벌 공급망 생태계 확보를 위해 기업유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으며, 그동안 GVC(글로벌 가치사슬)를 통한 생산 효율성 제고 중심에서 공급망의 탈동조화(Decoupling) 및 자국 생산 위주의 경제안보 중심으로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적극 추진하면서 반도체 산업에서의 기술적 우위와 제품개발 역량을 기반으로, 제조공정 기술이 강한 한국 및 대만과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여 이를 통해 조립, 검사 및 생산의 비교우위가 높아지고 있는 중국을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R&D에 자금을 제공하고, 기술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법안으로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이후 중심국이 되기 위해선 국내 기업생태계 강화를 통해 기술과 생산을 겸비한 종합 산업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무엇보다 강력한 산업정책의 부활을 통해 경제안보 시대의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큰 역할을 기대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 △ 한국경영학회 산업정책위원장 △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전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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