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블록경제 재현] 장벽 높이는 글로벌 플레이어…무너지는 가치사슬

2023-02-1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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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블록화에...짙어지는 제2의 대공황 그림자

미국-중국 갈등 격화, 경제 블록화 트리거

위기감 느낀 주요국, 너도나도 장벽쌓기

"취약한 韓, 기민하게 대처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이컵 루 전 미국 재무장관의 진단대로 세계는 1929년 대공황 이후 100년 만에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특히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 블록화 현상이 우리 경제를 더욱 옥죄어 오는 양상이다. 
 
글로벌 경제 블록화...짙어지는 대공황 그림자
대공황은 1929년 10월 뉴욕 월가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됐다. 그 여파가 모든 자본주의 국가로 번지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당시 미국은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해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관세를 부과했다. 이 법은 프랑스, 영국 등 다른 나라의 보복관세를 초래해 무역 거래가 급감하고 세계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 

미국은 북미와 남미를 엮는 '아메리카 블록'을 형성했고, 영국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식민지를 묶어 '스털링 블록'을 만들었다. 프랑스 역시 '프랑 블록'을 구축했다. 

블록 경제의 특징은 폐쇄성이다. 뒤늦게 열강에 합류해 독자적 공급망을 형성하기 어려웠던 독일과 일본은 이웃 국가를 침공해 새로운 블록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전후 세계는 동서 블록으로 나뉘었다. 1990년대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비로소 글로벌 경제에 자유무역의 꽃이 피었다.  
 
미·중 갈등 격화, 각자도생 인식 확산 
대공황 이후 100년 가까이 흘러 경제 블록화 흐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많은 국가들이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공급망 안정에만 매진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이 약화된 것이다. 

트리거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다. 미국은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 관련 공급망 완비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통해 원자재 조달부터 부품 수급, 제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중국은 대미 항전용 '쌍순환(雙循環)' 정책을 추진 중이다. 미국의 제재로 더 이상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할 수 없게 되자 중국이 주도하는 독자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는 한편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 위주로 경제 구조를 변경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난해부터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밀월 관계 형성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급망의 핵심은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이다. 

중국은 지난해 3~12월 러시아로부터 원유·석유·석탄·가스 등 4대 에너지원을 984억 달러(약 124조원)어치나 수입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43.6% 증가한 규모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감산 결정 이후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지난해 중국과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며 친밀도를 높여 가고 있다. 
 
너도나도 장벽 쌓기..."韓 기민하게 대처해야"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느낀 국가들은 그룹형 공급망 구축에 공을 들이는 상황이다. 일본과 대만이 반도체 3각 연대를 제안한 미국의 손을 잡은 게 대표적이다. 그 와중에 한국은 소외되고 있는 분위기다. 

일본은 네덜란드와도 반도체 관련 비밀 협의를 진행하며 협력 체제 강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붕괴하고 경제 블록화가 진전될수록 한국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원자재를 수입·가공해 부자재나 완성품을 수출하는 한국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상단에 위치해 있었다. 내수 시장이 작고 마땅한 자원도 없어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블록화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권역과 같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도 "미국에서는 최근 경기 전망과 관련해 '소프트 랜딩(연착륙)'과 '하드 랜딩(경착륙)'이 아닌, 상당 기간 호황을 유지할 것이라는 '노 랜딩(무착륙)’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며 "그만큼 미국 경기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 블록화에 따른) 피해가 커지면 미국이 '스톱'을 외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가지 않을까 싶다"며 "우리 대기업뿐 아니라 수출하는 중소기업도 이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기민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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