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투자자 시장 접근성 제고
정부는 7일 외환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해외 금융기관 및 투자자 거래 허용 △개장 시간 새벽 2시까지 연장 △디지털화 등 선진 인프라 구축 등을 핵심 내용으로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폐쇄적·제한적으로 운영돼 온 외환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는 게 목표다. 우리 거시경제 체력과 외환보유액 등 각종 지표가 비약적으로 개선된 만큼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현재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원화 환전을 하고 싶어도 국내 외환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미국 시간 오후 7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야간 시간대에 역외 시장에서 차액결제선물환(NDF)을 거래해 원화 매입 환율을 미리 확정하더라도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서는 원화 현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외환시장 개장 뒤 현물환 거래를 추가로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국내 투자자들도 수혜를 누릴 수 있다. 지금은 야간에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싶어도 국내 외환시장이 마감돼 시장 환율보다 높은 가환율로 환전하고 이튿날 오전 개장 이후 실제 시장 환율로 정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실제 애플 주식 100주를 매입할 목적으로 환전해도 환율 차이로 97주밖에 못 사고, 차액은 나중에 현금으로 돌려받는 등 애로가 있었다. 앞으로는 언제든 시장 환율로 환전이 가능해 당초 계획한 수량만큼 정확하게 해외 주식을 매수할 수 있다.
국내 금융기관도 제3자 외환거래, 대고객 전자거래 등으로 비거주자인 역외 고객과 접점이 넓어질 수 있다. 이번 조치로 비거주자도 본인 명의 계좌가 없는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게 되는 덕분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전 수요 확대와 더불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 환율 등락 폭 커질 수도
다만 외환시장 개방 수위를 높이는 게 향후 환율 관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라 이 같은 우려가 더 커진 모습이다.
한국은 미국처럼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중국·일본보다 외환시장 규모가 작아 환투기 세력에 더 취약하다.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라 환율 등락이 심하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정부 계획대로 외환시장 개장 시장이 연장되면 거래량이 적은 야간 시간대에는 '쏠림 현상'이 발생하거나 투기 세력이 준동할 수 있어 시장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해 미국의 초긴축 행보로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400원 선을 내준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정부와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은 물론 직접 시장에 달러를 매도하는 실제 개입에도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환율 불안은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를 자극해 민생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외환시장 선진화를 명분으로 내건 개편안이 환율 변동성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이에 대해 정부는 충분한 안전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정 요건을 갖춰 정부 인가를 받은 외국 금융기관만 외환시장에 참여하도록 하면 단순 투기를 목적으로 한 기관이나 헤지펀드가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내용 등이다.
또 시장에 참여하는 외국 금융기관은 반드시 국내 외국환중개회사를 경유하도록 의무화해 당국이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대근 한국은행 외환업무부장은 "자격 제한을 두고 인가 과정에서도 여러 의무 사항을 부여할 것"이라며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