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정책 경쟁을 저해하는 '묻지마 지지'

2023-02-08 07:00
  • 글자크기 설정

노희진 SK증권 감사위원장(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노희진 SK증권 감사위원장(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시간의 빠름을 새삼 느낀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다. 난방비 폭등과 부동산 폭락의 여파로 서민 가계의 부담은 커지고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입으로는 민생을 챙기겠다고 지지를 호소하면서 범죄 혐의가 있는 대표의 방탄에 골몰하는 거대 야당과 차기 공천권 행사의 주도권이 걸려있는 대표 선출에 정신이 팔린 여당 모두 민생보다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이러한 행태의 이면에는 ‘묻지마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는 듯하다. 잘하든 못하든 지지를 받으면 잘하려고 노력할 유인이 줄어든다. ‘묻지마 지지’의 폐해다. ‘묻지마 지지’는 비판적 사고의 부재에 기인한다. 비판적 사고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 입수가 필요하다.
 
정치 분야에서 보수든 진보든 ‘묻지마 지지층’이 존재한다. 지지를 받는 정치가는 좋겠지만 이러한 지지층이 느는 건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비판적 사고를 하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정책 경쟁이 활성화되고 정치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다.

여야가 민생을 챙기기 위한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권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묻지마 지지’보다는 제시된 정책의 효과를 꼼꼼히 따져보는 비판적 사고를 지닌 국민이 많아질수록 정치권은 국민의 눈치를 더 보게 될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민주당은 검수 완박 관련 입법, 임대차 3법, 소위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전단 금지법 등을 당시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의 힘으로 입법화하였다.
 
검경 수사 조정으로 인해 검찰이 마약사범의 수사에 제약을 갖게 됐고, 마약 사범 수는 증가했다. 경찰청 수사본부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 사범 수는 1만2378명으로 전년대비 11.6% 증가했다.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전세가는 폭등했다. 그 이후 금리 인상기에 부동산은 하락하고 전세가는 폭락하게 되어 깡통 전세까지 나타났다. 시장의 전세가가 비교적 안정적인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을 따라갈 수 있던 상황에서, 폭등과 폭락을 야기시킨 임대차 3법은 다수의 임차인과 임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북한은 국민들이 정확한 외부의 정보를 전달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독재 정권은 ‘묻지마 지지’를 요구하고, 정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우려한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전단 금지법을 만들어 북한 국민들에 대한 정보 제공을 막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정책은 입법을 통해 구현된다. 상기 입법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경고음은 그 당시 야당의 반대 목소리에 이미 나타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묻지마 지지층을 등에 업고 다수의 힘을 이용하여 입법화를 진행하였다. 입법의 결과 부작용이 나타났고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교육, 연금 개혁을 3대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에서 이에 못지않게 개혁이 필요한 분야가 정치 분야이다.
 
정치 개혁의 주체는 국회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지난번 선거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정당이나 개별 국회의원 간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선거제도 개편은 난제 중 난제이다.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의 도입은 양당의 위성 정당 창당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특권을 내려놓는 개혁은 당사자가 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국회의 동의를 받아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치 개혁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에서 정치 개혁을 위한 방안을 만들고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면 어떨까.

정부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나라 발전을 위한 비젼과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정치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지만 한때는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산아제한 정책은 1996년에 멈추었다. 장기적 안목을 지니고 정책 효과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했더라면 산아 제한 정책은 진작 폐기됐어야 했다. 실기하지 않았다면 지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그만큼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소득 주도성장, 탈원전, 부동산 중과세 정책은 의도했던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새로운 정책 추진 시 지지 세력의 ‘묻지마 지지’에 기대지 말고 정책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선행돼야 한다.
 
‘묻지마 지지’보다는 정책 효과를 제대로 확인해 보려는 비판적 사고를 갖는 국민이 늘수록 정책 설계자들은 더 신중히 정책을 검토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