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다양성 과제] 비례대표 '당리당략' 그만…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약자 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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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정치 독식 막고 도입 본래 취지 살려야

전문가들 "의원정수 늘려서라도 선발 확대해야"

현행 선거제 평가와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를 위해 지난 19일 오후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소위원회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 발제자로 참석한 문은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구원 전임교수(왼쪽부터),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 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진=연합뉴스]

비례대표제를 관통하는 단어는 소수 정당, 여성·장애인·청년·다문화 가정 등 정치적 약자다. 정치적으로 소외된 정당이나 계층들을 위해 마련한 선거제도라는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국회 등 대의기관 구성원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선거제도다. 쉽게 말해 총선에서 득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수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을 받는 소수 정당도 일정 부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소수 정당도 득표수에 따라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인 약자도 정치계 입문이 가능하다. 정치적 강자와 다수당만 제도권 정치를 독식하는 극의 정치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가 비례대표제 본래 취지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취지를 악용해 정당 대표들 간 자리 나눠 먹기, 줄 세우기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유권자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이 비례대표제 취지를 되살려 이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나눠 먹기'로 전락한 비례대표···'정치적 약자' 등원 수단 잠재력 분명
우리나라 역시 비례대표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소선거구·비례 혼합형' 선거제도다. 지역구 253석에 비례대표 47석(준연동형 30석+병립형 17석)으로 배분하고 있다.

다만 현행 비례대표 선출이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각 당 당리‧당략에 따라 결정되면서 일각에선 비례대표제를 아예 폐지하고 미국처럼 100% 소선거구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 정치사에 비례대표제는 5·16 군사 쿠데타 직후 치른 6대 총선(1963년)에 '전국선거구'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9대 총선(1973년)에 유신정우회(대통령이 임명한 교섭단체)로 대체돼 사라졌다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인 11대 총선(1981년)에서 부활했다.
 
독재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비례대표제가 악용된 것으로, 비례대표 결정 방식이 국민이 아닌 당이 당선 순위를 정하는 '폐쇄형 정당명부제'로 운용됐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비례대표는 정당 보스나 각 계파 수장들 간 나눠 먹기 대상으로 전락해 줄 세우기 공천, 계파 갈등, 공천 헌금 논란 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비례대표 후보자들 역시 국민보다는 계파 보스에게 충성을 바쳐 '당선 안정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치권은 대안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2001년 헌법재판소가 1인 1투표 방식 비례대표 의석 배분이 위헌이라고 결정했고 2004년 17대 총선부터 '1인 2표'(지역구 선거와 정당 투표 분리) 제도가 도입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등장했다.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을 지역구 결과에 연동해 정당 득표율에 따른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더불어시민당 창당으로 응수하면서 준연동형은 무력화됐다.
 
◆다양한 계층 목소리 담기 위한 비례대표 확대 필요 
많은 논란과 한계가 있지만 비례대표제가 다양한 계층‧직능‧세대 목소리를 대변하는 통로가 되고 청년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이른바 '정치적 약자'들이 국회에 등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잠재력은 분명하다. 17대 국회에서는 최초의 시각장애인(정화원)과 여성장애인(장향숙)이, 19대 국회에서는 최초의 탈북민(조명철)과 최초의 귀화인 의원(이자스민)이 탄생했다. 21대 국회 최연소 20대 청년 의원도 비례대표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기록했다.
 
결국 비례대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개혁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 19일 개최한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은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서라도 비례대표 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당 독점구조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선거제도가 비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지역구 의석을 줄이든, 전체 의석을 늘리든 비례대표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 역시 “현행 소선구제 승자독식 제도가 '소수의 다수화 현상'을 만든다”면서 "준연동비례대표제의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100% 연동형 비례제로 개정하는 것이 최선의 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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