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동결을 넘어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치는 이른바 '착한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와이즐리, 크라운제과, 오리온 등이 원가 상승 요인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낮추거나 동결하는 정책으로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면도기 가격 파괴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에게 지지를 받았던 와이즐리의 가격 인하는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지난해 3월 43%나 가격을 인하한 데 이어 최근 전 제품 가격을 추가로 17% 내렸다.
이는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의 역발상 전략 일환이다. 허 부회장은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고 임직원에게 강조해왔다. 가격 경쟁력은 이커머스뿐 아니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채널에서 경쟁사에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인이다.
크라운제과는 2019년부터 제품 가격을 동결해왔다. 원가 상승 부담을 회사가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크라운제과 관계자는 "제품 가격 인상과 관련해 아직까지 결정된 바는 없으며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 또한 최근 산지 시세가 20% 급등한 굴비 설 선물세트 가격을 지난해 수준으로 판매하기로 했다. 시몬스는 올해 가격 동결을 약속했으며 알레르망 역시 침대 브랜드인 스핑크스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고환율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이 '착한 가격'을 고집하는 배경은 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어서다.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으면 충성 고객도 늘어난다.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 사이에서는 착한 기업 선호도가 뚜렷하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MZ세대 소비성향에 대해 설문을 실시한 결과 10명 중 6명은 물건을 구매할 때 조금 더 비싸더라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선호한다고 답한 바 있다.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라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가격을 동결하거나 낮추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들은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원가 관리에 나서고 있다.
와이즐리는 광고마케팅 비용과 유통 수수료를 없앴다. 일반 소비재 가운데 제품 제조 원가보다 광고비와 유통 수수료가 높은 제품이 허다하다. 와이즐리는 유통 채널을 단순화하고 SNS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제품을 알리는 데 주력하며 원가율을 낮췄다. 오리온 또한 비효율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이를 제품 경쟁력 강화에 투자한 후 남는 이윤을 제품 증량 등으로 소비자에게 환원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재혁 고려대 ESG연구센터장은 "가성비보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를 중요시하는 M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착한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며 "모든 기업이 가격을 인상할 때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 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자 이익을 높이려는 시도는 ESG 경영 일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