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보다 파산 선택하는 中企..."유명무실 기업회생 패스트트랙"

2022-12-2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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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늘고, 회생 줄고..."회생 절차 못 버텨"

패스트트랙 도입 10여년..."제도 취지 무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022년 여름 중소 화장품 업체 A대표는 파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화장품 소비가 줄어든 데다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거래처들의 상황이 좋지 않아 제품 생산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적자를 거듭하던 중 A대표는 "파산 신청을 위해 로펌으로 향했다"며 "앞으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생보다 파산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을 지속하기보다 청산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법조계에서는 기업 회생 패스트트랙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회생 절차는 여전히 하세월이라고 지적한다. 극심한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내년에는 회생을 통해 다시 일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버티기보다는 파산을 선택하는 기업이 더욱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8일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11월 법인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건수는 897건에 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작년 같은 기간(848건)보다 5.7% 늘어난 것이다. 법인 파산 신청이 가장 많았던 2020년 1~11월(984건)에 이어 둘째로 많은 수치다. 2018년에는 같은 기간 737건, 2019년에는 848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1~11월 법인 회생 신청 건수는 △2019년 1588건 △2020년 1427건 △2021년 1092건 △2022년 937건 등으로 점점 줄었다. 법인 회생은 법원의 직간접적인 관리 감독을 받기에 '법정관리'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그렇기에 법원의 엄격한 판단과 기준에 따라서 인가 여부가 결정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희망을 잃어버린 법인 입장에서 길게는 10년까지도 걸리는 회생 절차를 밟느니 차라리 파산 신청을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패스트트랙 도입 10여년..."절차 시작부터 진통"
법원은 지난 2011년 법정관리를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필수적으로 거치게 돼 있는 기업가치 조사와 회생계획안 제출 과정 등을 건너뛰고 '사전계획안'을 중심으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현행 10년까지 설정돼 있는 법정관리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계획안 단계에서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 기업 회생·파산 전문가들의 말이다. 사전계획안은 변제계획부터 사업계획까지 최대한 세세한 내용이 담겨야 하고 그 계획이 실질적으로 실현이 가능한지도 포함돼야 하는데, 고꾸라진 기업이 이를 정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기업들은 현재의 청산가치는 얼마인지, 향후 10년·20년 후에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기대가치는 얼마인지도 증명해야 한다.

도산 전문 이은성 변호사(법률사무소 미래로)는 "기업이 브랜드 가치가 있는지, 법인을 바꾸게 될 경우에는 거래처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 있는지, 채권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갖고 있는지 등 세 가지 정도를 점검한다"며 "이런 세 가지 정도 때문에 회생을 하고 그 외에는 대부분 파산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꾸라진 기업, 기업 가치 설명해야...파산 선택"
또 기업이 채권자와 주주, 지분권자 등 이해관계인 등에게 '기업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데, 이 같은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회생·파산 전문 채혜선 변호사(법무법인 하나)는 "회생은 기업을 일으키는 과정인데 대기업 위주로는 그렇게 한다"며 "회생 절차가 버겁게 느껴지고 의지를 잃어버린 중소기업들은 파산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에서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적극적으로 절차를 진행하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며 "재판부에서 의지를 갖고 진행할 때 기업 대표나 대리인, 이해관계인 쪽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속도를 낼 수가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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