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내년 국내 물가는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것"이라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물가가 내년 하반기에 접어들수록 점차 안정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둔화 속도에 대해서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 예측이 쉽지 않다"면서 "당분간 통화정책 역시 물가에 중점을 두고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오전 서울 한은 본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말씀을 통해 "최근에는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다소 진정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7월(6.3%) 정점을 찍은 뒤 5%대로 둔화 추세에 접어든 물가 추이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둔화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했던 국제유가와 지난 여름 집중호우 등의 영향으로 크게 올랐던 농산물가격이 상당폭 하락한 데 주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6월 중 40% 가까이 뛴 석유류가격은 지난달 5.6% 상승에 그쳤고 농산물가격 역시 지난 여름 10% 이상 상승한 뒤 11월 들어서는 전년 대비 2% 하락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의 물가 흐름에 대해서는 "당분간 5% 내외의 상승률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국내외 경기 하방압력이 커지면서 오름세가 점차 둔화돼 내년에는 상고하저의 흐름을 나타내면서 점차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둔화 속도와 관련해서는 향후 국내외 성장 및 유가 흐름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는 시각을 분명히 했다. 불확실성 주 요인으로는 OPEC+ 감산, 대러 제재 강화 가능성 등과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이 가격과 임금 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내년 전기요금 인상폭이 그간 누적된 원가상승부담 반영으로 11월 전망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거론했다. 이와함께 국내외 경기 둔화폭 확대, 부동산 경기 위축 등 수요측 하방압력도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총재는 이에 더해 "중국의 방역조치 완화도 성공 여부도 물가 흐름에 있어 상방과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높아진 국면에서는 대내외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고 이는 국내 뿐 아니라 주요국에서도 관측되고 있는 현상인 만큼 이러한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면밀히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총재는 내년에도 이같은 물가 상황을 통화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내년중 물가상승률이 점차 낮아지더라도 물가목표 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영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물가 오름세 둔화 속도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앞으로 발표되는 데이터를 통해 그간의 정책이 국내경기 둔화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최근 미 연준 등 주요국 정책금리 변화도 함께 고려하면서 정교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총재는 "전세계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물가목표 수준을 큰 폭 상회하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해 국민들께서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정책대응이 없었다면 향후 국민경제에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해 달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