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기술혁신과 세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2-12-1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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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교수]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가 파산하였다. 암호화폐 시장에는 규제가 거의 없어 고객 예치금 관리가 부실했고, 고객 예치금에 대한 보험도 없기 때문에 대량 인출 사태가 생기자 거래소가 바로 붕괴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가 생겨날 것은 분명하다. 중앙에서 정부가 관리하지 않는 분산적인 신뢰보증 메커니즘, 이른바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하는 화폐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암호화폐의 근본적인 한계를 새삼 확인한 사건이다.

흥미로운 것은 FTX 파산을 기술호황(tech boom)이 끝난 신호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근자의 주가 하락으로 기술호황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상징적 사건이 된 것은 분명하다. 흔히들 2000년대 초 닷컴거품(dot-com bubble) 이후 숨 고르기 기간을 거쳐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전개된 자본시장 상황을 제2차 기술호황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창업된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창업된 아마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크게 활약하고, 숱한 정보통신 기반 창업 회사들이 높은 시장가치를 인정받았던 시기다.

뉴욕을 주무대로 하는 투자은행들이 돈을 제일 잘 버는 '금융의 시대'가 한 세대를 풍미했다가 지나간 것처럼 실리콘밸리를 주무대로 하는 기술회사, 특히 정보통신기술회사들이 돈을 제일 잘 버는 '기술의 시대'도 이제 지나가는 것인가. 아니면 10년 주기로 기술호황이 반복될 것인가.

기술호황에 편승하여 주식뿐만 아니라 다른 자산들의 가격도 올랐다. 호황에는 거품이 있게 마련이다. 자산의 내재가치를 넘어선 부분이 거품이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내재가치고 어디서부터 거품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지폐, 곧 종이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다고 단선적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종이에 불과한 주식도 회사가치의 지분만큼 내재가치를 지닌 것처럼 국가에서 발행하는 종이화폐도 나름대로 내재가치를 지니고 있다. 설사 다른 데서 가치를 쳐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국가에 세금을 낼 때는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내재가치가 전혀 없는 자산도 있다. 암호화폐가 그렇다. 암호화폐의 가치는 순전한 거품이다. 시장의 심리에 따라 가치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 거품이 터지는 것이다. FTX 파산의 뿌리는 암호화폐 가격의 폭락이다. 호황기에 자산시장을 배회하던 거품이 터진 것이므로 이를 기술호황이 끝난 신호라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30여 년은 세계경제가 질적으로 크게 변화한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세계경제는 두 축으로 성장하였다. 한 축은 기술혁신이고, 다른 한 축은 세계화(globalization)다. 기술혁신으로 생산 역량이 향상되었고, 세계화로 시장이 확대되었다. 하나는 공급의 진화이고, 다른 하나는 수요의 진화다. 경제에서 단기적으로는 수요가 생산활동의 크기를 결정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이 성장을 결정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술혁신이 밀고 나는 힘으로 세계화도 이루어진 것이다. 정보통신기술 발달이 세계화를 가속화한 측면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주안점은 이전에 없던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의 공급이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고 그 시장을 전 세계로 확대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다.

1916년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라는 평론에서 독과점으로 집중된 자본이 수익을 찾아 전 세계로 투자 영역을 확대하면서 영토적 확장으로까지 치닫게 된 게 제국주의라고 분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토적 확장을 추구하는 제국주의는 후퇴했지만 레닌이 분석한 자본의 영역 확대는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 세계화는 경제가 중심이지만 사회적·문화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역설적인 것은 18세기 후반에 시작하여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 걸쳐 식민지 경영을 추구하는 제국주의세력이었던 서구 국가들이 경제적 그리고 새로운 영역에서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는 데 비해 레닌의 후예인 공산당이 지배했던 러시아와 지금도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은 아직도 물리적 영토 확장이라는 구식 제국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술호황의 종말이 기술혁신이 밀고가는 세계화의 종말로 이어질 것인가. 기술혁신은 끝나지 않았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영역의 세계화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술호황도 한동안 후퇴했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인가. 천재 레닌에게 물어봐야겠다.


채수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수학과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카이스트 대외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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