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에 한국 사람 모두가 환호하였다. 그중에서도 “내 생애 이런 일이···” 하면서 특별히 감격한 것은 수학자들이었다. 학부 때 수학을 전공했으나 재능이 부족하여 포기하고 부전공이었던 경제학을 업으로 삼게 된 필자에게도 남다른 소회가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대 수학과에서 수학도를 대상으로 한 허준이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역시 필즈상 수상자다운 깊이를 보여준 명강연이었다. 허준이 교수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인 조합론의 어떤 문제들을 전통적 분야인 해석학과 기하학 문제들과 연결 지어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업적을 설명하는 게 강연의 목적은 아니었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의 추측이나 난제들의 해결 방식이 묘하게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100년 남짓 해결책을 찾아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다수의 천재 수학자들의 업적을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허준이 교수 강연에 앞서 물리학자인 오세정 교수가 서울대 총장으로서 인사말을 했다. “서울대가 천재를 들여와 둔재로 내보낸다는 평가도 있지만 허준이 교수는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얘기를 했다. 오세정 교수는 서울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분이니 자신을 디스한 뼈 있는 농담으로 그 자리에 있던 동료 교수들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1970년대에 우수한 학생들이 물리학과에 많이 갔지만 아직 노벨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필자는 수학계 내적 분위기(sociology)에 주목한다. 그동안 한국에서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들이 받아온 기대와 거기에 따르는 지원과 비교해서 보면 수학 분야에 대한 기대와 지원은 미미했다. 수학계는 동호인 모임 같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명예나 성공에 초연해서 수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연구하고 후배들을 지도한 선배들이 있었다. 물론 다른 분야에도 개척자들이 있었다. 많은 훌륭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교육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기업의 기술 혁신에 기여하였다. 이들은 일인 다역하느라 너무 바빠서 연구에만 몰입하기 힘들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종이와 연필, 그리고 칠판과 백묵만 있으면 되는 수학자들은 다른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수학자들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는 추상적인 수와 점, 선, 면, 공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람들이다.
2014년 ICM에서 초청강연을 했던 40세를 갓 넘긴 수학자가 혼잣말처럼 필자에게 말했다. “이제 보니 필즈상도 불가능한 게 아닌데, 더 열심히 할 걸···.” 젊은 수학자들의 활동을 주목해온 필자는 한국에서 노벨상보다 필즈상이 먼저 나온다고 단언했다.
그럼 한국 과학계에서 노벨상은 먼 데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의 학문 수준은 이제 세계 수준이 되었다. 필즈상은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는 상이고 노벨상은 나이 제한 없이 주는 상이니 수학에서 먼저 나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또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필자는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체계 개편에 관여한 적이 있고, 그 졸업생들이 카이스트에 들어와서 보여주는 창의성과 리더십에 주목해왔다. 그들 중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전에 1970~1980년대 대학에 입학한 천재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둔재가 되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채수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수학과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카이스트 대외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