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오범석'의 감정은 물결과 같아서 자칫하면 시청자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캐릭터로 전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 홍경은 차근차근 '오범석'이라는 인물을 시청자들에게 설득해나갔다. 시청자들에게 '오범석'을 소개하고 설득했으며 이해시켰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범석'을 연기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어요. 실제로 고민하고, 고심하는 시간이 길었고요. 한준희 감독님보다 되려 제가 제 스스로를 의심했던 거 같아요. '못 할 것 같다'라고 손사래를 쳤는데 한준희 감독님과 유수민 감독님이 제 손을 잡고 일으켜주셨죠."
드라마 '약한영웅'은 상위 1% 모범생 '연시은'(박지훈 분)이 처음으로 친구가 된 '안수호'(최현욱 분), '오범석'(홍경 분)과 함께 수많은 폭력에 맞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차이나타운', 넷플릭스 'D.P.'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로 나서고 신예 유수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홍경이 연기한 '오범석'은 집 안팎으로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아이다. 제 이름보다 '국회의원 아들'이라고 불리며 불량 학생들의 표적이 돼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다. 명문 자사고인 '문강고'에서 따돌림 문제로 '벽산고'로 전학을 오게 되고 그곳에서 부조리한 폭력에 대항하는 '연시은'(박지훈 분), '안수호'(최현욱 분)와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을 동경하며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열등감에 그들과 등지게 된다.
"'내가 감히 이 친구(오범석)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겁이 났어요. 동시에 이 작품과 캐릭터에게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고요.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해서 더욱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제가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도 한준희 감독님과 유수민 감독님은 오히려 저를 믿어주셨고 기다려주셨죠."
앞서 언급한 대로 '오범석'의 감정은 작은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사춘기 소년이 느끼는 감성들을 오래 고민하고 치열하게 분투하며 '오범석'을 세공해왔다.
"10대는 참 어려운 거 같아요. 10대의 삶은 스스로 정의 내리고 환경을 만들 수 없거든요. 그게 참 슬픈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아가 생기고 내 생각과 주관만으로 주변 환경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범석'이 처한 상황이 그렇죠. 계속해서 꼬이기만 하고요. 그걸 마주 보는 게 참 버거웠어요. 제가 10대가 아니다 보니 그를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그 시기가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죠. 살면서 한 번쯤 느껴보았던 열등감이나 소속감 같은 거요."
홍경은 '오범석'에게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어딘가에 숨어있는 그를 찾아내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다.
"범석이 느끼는 걸 오롯이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했죠. 어떤 거라고 콕 짚어 말하기 어려워요. 다만 그 아이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 그게 제가 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홍경의 진심은 통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가 그려낸 '오범석'에 마음이 쓰였다.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지만 발붙이지 못한 채 떠돌았고 누구보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이 친구가 마냥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말, 이해가 간다는 말이 참 감사해요. 물론 이 친구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누군가 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의 마음에 공감해줄 수 있다면 제겐 참 고마운 일 같아요."
연기자가 아닌 인간 홍경이 보는 '오범석'도 궁금했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본 '오범석'의 감정들과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들을 물어보았다.
"'오범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나 어떤 그를 둘러싼 환경은 바꿀 수 없다는 점이 마음 아팠어요. 유독 마음이 시렸던 건 자신의 선택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였어요. 연기자가 아닌 인간 홍경으로서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 마음이 무거웠던 거 같아요."
'약한영웅'은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개개인의 서사를 나열하거나 고백하기보다 몇몇 정보를 흘리고 관객들이 그를 유추할 수 있게끔 만든다. 이 작품에 '드라마 덕후'가 몰리는데도 한몫하는 부분이다. 홍경과 '오범석'의 서사를 나누고 작은 디테일을 짚으며 '옷장 신'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범석'은 집에서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거죠. 두려움을 느낄 때 옷장에 숨어드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집 안에서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마저도 발각되고 말았지만요. 제게는 이런 디테일이 참 중요했어요. 옷장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의미를 두고 연기했는데 시청자분들께서 그 부분들을 알아봐 주셔서 참 좋았어요."
홍경은 박지훈, 최현욱과 함께 한 현장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치열했고 뜨거웠다"라고 말하며 애정을 가득 담아 표현했다.
"저도 그렇지만 (박)지훈이, (최)현욱이 모두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해주었어요. 그게 고스란히 전달되더라고요.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고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었어요. 땀과 노력을 쏟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또래 배우'와 호흡한 소감을 묻자 "그들은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함께 호흡을 맞춘 동료 배우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많은 걸 배웠다"라고 전했다.
"'시은'이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그려내는 게 참 힘들었을 텐데. 지훈이가 그걸 잘해주었어요. 많은 걸 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존재감을 잘 보여주었죠. 같이 연기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현욱이 같은 경우는 참 유연한 배우예요. 하지만 그 유연함을 위해 많이 노력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함께 연기 할 때도 놀라웠지만 완성된 결과물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어요. 다들 어떻게 이렇게 잘할까? 하하하. 좋은 충격을 받았죠."
지난 2017년 데뷔해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홍경. 데뷔 5년째인 그에게 "배우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해 질문했다.
"요즘 '내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해요. (직업적인) 생명력에 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에너지에 관한 고민이에요.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이만큼의 에너지를 쏟아내는데 다음 작품도 이만큼 쏟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거죠. 이렇게 다 쏟아내고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때 어떤 두려움을 느껴요. 아직 데뷔 5년밖에 되지 않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꾀부리지 않고 전력투구하고 있거든요. 익숙해지지 않고 진심을 쏟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죠."
온 마음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배우들에게는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게 충전하는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작품이 끝난 뒤 쉬는 동안 하고 싶은 일"에 관해 물었다.
"평소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여행을 가곤 해요. 그런데 '약한영웅'이 끝나고는 시간이 밭아서 여행 가기가 어렵네요. 주변에 영화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함께 맛있는 걸 먹으면서 시간 보내는 일이 참 좋아요. 같이 고민 나누고 하다 보면 충전되는 거 같아요. 이제 작품도 마쳤으니 다시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