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장수지역의 흥망성쇠, 영원한 불로촌은 없다

2022-12-08 14:40
  • 글자크기 설정

[박상철 교수 ]



 불로장생 추구는 인류의 근원적이고 공통적인 속성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환으로 인류는 불로촌이라는 상상의 공간을 염원하고 추구하여 왔다. 신화나 종교뿐 아니라 문학작품에 불로촌으로 등장하는 에덴, 파라다이스, 딜문, 엘리시온, 아틀라스, 샹그릴라, 요지, 무릉도원, 강린포체, 극락, 비미니, 럭낵, 용화세계 등은 환상의 지역이었으며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곳들이었다. 불로촌이 구체화되면서 20세기 중반 이후 코카서스의 압하스, 히말라야의 훈자, 안데스의 빌카밤바 지역이 등장하였지만 인구실태조사에서 허상이 드러났다. 이후 체계적 분석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등장한 세계 최고 장수지역은 오키나와였다.  

 오키나와는 '장수(長壽)'지역의 대명사로서 20세기 말까지 '장수 국가' 일본에서 부동의 1위였다. 대표적 장수마을로 알려진 오기미손(大宜味村) 입구에는 “80세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90세가 되어 마중 나오면 100세까지 기다리라고 돌려보내라”고 적힌 유명한 장수선언비가 서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2021년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47개 광역자치단체 중 오키나와의 평균수명이 남성은 36위로, 여성은 7위로 몰락하였다. 그동안 장수지역으로서 오키나와 전통의 80% 식사법(腹八分目)이며, 생업을 오래 지속하여 백세가 되더라도 자신의 일은 독립적으로 처리한다는 비법들이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결정적인 원인으로 미군 주둔이 시작되어 오키나와의 전통문화와 생활습관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먼저 미국식 문화가 유입된 결과 2017년 인구 10만명당 패스트푸드 점포 수는 오키나와가 도쿄 다음으로 2위가 되었고, 미군 주둔은 자동차 보급을 일찍 확대시켜 주민들의 생활패턴이 크게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2011년 남성 비만율이 42.1%로 일본 내 최고가 되었고 여성 비만율도 34.7%로 전국 평균의 1.7배가 되었다. 오키나와인 당뇨병 사망률은 1970년대 전국 최저 47위였지만 현재는 당뇨병 사망률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아졌다. 음식과 생활방식이라는 문화적 특성은 주로 젊은 세대에게 민감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전쟁 이후 세대인 현재 50대, 60대, 70대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평균수명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전통 생활습관이 사라지고 특유의 집단 슬로 라이프가 무너지면서 오키나와는 더 이상 장수지역이 아니고 단명지역의 나락에 빠지는 충격을 주었다.

 이와 반면 새롭게 나가노현이 최고장수지역으로 부상하였다. 일본 중부 북알프스에 소재한 나가노는 과거 평균수명도 최저이고 주민들 뇌졸중 사망률이 아주 높은 건강위험지역이었다. 그런데 1946년도에 이 지역에 들어선 의사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이 특별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와카츠키 준이치(若月俊一)박사는 달구지에 의료기구를 싣고 왕진을 다니면서 주민들의 생활습관이 극히 불량함을 발견하고 식생활과 노동습관 개선을 중시하는 예방교육을 주민들에게 실시하여 왔다. 이러한 의료전통이 농촌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일으켰고 치료에 앞서서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후 나가노현과 지역도시들이 합심하여 주민들의 생활습관 개선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결과 일본의 47현 중에서 남녀 공히 평균수명 1등을 차지하는 장수지역으로 부상하였다. 나가노현의 마쓰모토(松本)시는 후생성으로부터 “Smart Life Project”상을 수상하여 건강수명연신도시 (健康壽命延伸都市)로 불리게 되었다. 식생활개선으로 뇌졸중 원인이 되는 식품염도를 낮추어 소금섭취량을 절감하였고 단백질부족을 해소하기 위하여 곤충을 조리하여 섭취하고 다양한 야채를 포함한 균형있는 영양소를 섭취하도록 권장하였다. 근로활동은 나이가 들어도 가능한 한 최대 지속하도록 하였다. 의료측면에서는 왕진의료를 권장하여 병원 입원율을 크게 낮추었다.

 특히 지역의 건강증진프로그램 중에서 큰 빛을 보게 된 성과는 전 주민 걷기 운동이었다. 고령인에게는 신체적 불편과 정서적 불안, 사회적 고독으로 실제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 있는 운동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그러나 걷기는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쉽고 경제적이며 효과가 확실한 대표적인 노인운동프로그램이다. 마쓰모토시는 이러한 걷기운동을 지역의 정책으로 추진하여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우선 걸어다닐 수 있는 둘레길 코스를 100군데 이상 개발하여 흥미를 돋우었다. 운동 시에는 혼자 걷지 않고 그룹별로 함께 걷게 하였다. 걷기방법으로는 3분 빨리 걷고 3분 천천히 걷는 인터벌워킹을 권장하였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운동과 유사하게 심폐자극을 주기 때문에 평지만 걷는 운동보다 인터벌워킹은 건강 증진효과가 높다. 걷기운동 참여자들의 건강상태를 지속적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정기적으로 건강 컨설팅하여 참여도와 신뢰도를 모두 높였다.

 그 결과 초고령인구가 많은 최장수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의료비지출은 일본 47개현 중에서 최저 4위에 불과한 성과를 보여 사회재정 안정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바로 평균수명에 못지않게 건강수명이 크게 연장되는 성과를 가져왔다. 당국자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을 걷게 하였다. 걷는 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걷게 하였다(Walk and Talk). 결과적으로 주민공동체의식도 강화되었다.” 주민들이 어우러져 함께 걷게 하고 수많은 주민들에게 건강보조자 교육을 시행하여 생활습관 개선 운동을 확대하고 보편화하기 위한 충분한 자원봉사자 망을 확보하여 효율성과 재정건전성을 크게 높였다.

 오키나와와 나가노의 사례에서 장수지역의 흥망성쇠를 볼 수 있다. 전통적 생활습관문화가 무너진 오키나와는 단명지역으로 바뀌고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생활습관을 인위적으로 개선한 나가노는 세계적 장수지역이 되었다. 장수지역이 결코 영원하지 못하며 흥망성쇠가 엄연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장수는 지역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습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 못하다. 인류가 품어왔던 불로촌의 꿈도 결국은 지역주민들의 생활습관 개선을 바탕으로 현실화되리라 기대해 본다. 비록 현재 단명지역일지라도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얼마든지 장수지역으로 진입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생활습관 개선이 고령사회를 대응하는 확실한 해법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