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용산구에서 진행된 영화 '올빼미' 언론·시사회 현장이었다. 주연 배우인 유해진은 류준열을 두고 '굵은 기둥'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배우 류준열은 유해진의 말에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언제나 유쾌하게 현장을 찾았던 류준열인 만큼 그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지인들에게 굉장히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진짜 울었어?'라고요. 제가 눈물 흘렸다는 사실에 많이 놀란 모양이었어요. 하하하. 지인들에게는 아니라고, 울지 않았다고 둘러댔지만 (유해진의 말에) 눈물이 났어요. 칭찬을 남발하는 분이 아니거든요. '올빼미' 촬영 현장부터 선배님께서 해주셨던 말씀들이 떠오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2015년 영화 '소셜포비아'로 데뷔해 7년 동안 10여 편에 출연하며 치열하게 버텨왔다. 쉼 없이 달려온 류준열은 어느새 '충무로 주춧돌'로 불리게 되었다.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는 그런 류준열의 필모그래피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첫 사극, 맹인 침술사라는 어려운 배역을 흔들림 없이 소화해냈다. "굵은 기둥이 되었다"는 유해진의 평가가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류준열이 주연을 맡은 영화 '올빼미'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류준열 분)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 '변호인' '부산행' '7번방의 선물' 등 천만 영화를 다수 보유한 NEW가 투자·배급을 맡았고 화제의 영화 '왕의 남자' 조감독 출신인 안태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시나리오가) 짧은 편인데 굉장히 몰입도가 높더라고요. '올빼미'는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과정이 촘촘하게 살아 있었어요. (작품에) 확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류준열은 극 중 맹인 침술사 '경수' 역을 맡았다. 뛰어난 침술 실력을 인정받아 입궐하게 된 그는 '소현세자'를 치료하던 중 '주맹증'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게 된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그를 따스하게 품어주고 '경수'는 '소현세자'의 신임을 얻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경수'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더 큰 진실을 마주하며 혼란을 겪는다.
"사실 저는 부지런한 편은 아니에요. 관객들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주변에 있는 사람 같은데?'라고 느낄 수 있는 캐릭터들을 연기해왔고, 그런 작품을 선호해왔어요. 하지만 '올빼미'는 달랐죠. 시나리오를 읽으며 '경수'는 (연기하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올빼미'에 매료되어 있었고 꼭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죠. 그동안 제가 맡았던 배역이나 연기가 아니더라도 꼭 참여해보고 싶었어요."
류준열은 '주맹증'을 앓는 '경수'를 연기하기 위해 캣워크를 걷거나 화보를 찍고 있는 모델들 모습을 관찰했다. 그들 눈에서 어린 시절 만났던 맹인의 시선을 떠올렸다.
"모델들 눈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묘한 인상을 주더라고요. 먼 친척이 맹인인데 어릴 적 그분을 뵙고 (시선이)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어요. 그 눈을 모델들에게서도 본 거죠. 모델들 촬영 결과물을 보고 하나하나 레이어를 쌓아서 복합적으로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경수'는 연기적인 기술도 필요한 캐릭터였다. 어두운 곳보다 밝은 곳에서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겪고 있는 '주맹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체득한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봉오동 전투' 총격 신을 찍을 때 눈을 깜빡이지 않는 기술을 익혔거든요. 그때 익힌 것들을 이번 작품에서도 써먹는 식이죠. '장하'('봉오동 전투'에서 맡았던 배역)에게 도움을 받은 거죠."
그는 세심한 연기를 위해 주맹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맹인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극 중 '경수'는 밤이면 시야가 확보되고 보다 자유로워지죠.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경수'가 궁 사람들을 피해 달아난다는 설정을 보고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던 거죠. 주맹증을 앓고 있는 분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달리기도 가능하다고 해요. 맹인 학교에는 '뛰지 마시오'라는 푯말도 붙어 있대요. 보이는 정도가 각각 달라서 거기에서 오는 충돌이 있대요.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경수'는 밤이면 시야 확보가 자유롭고 뛰기도 하는 정도라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경수'는 진실을 말하느냐, 말하지 않느냐 하는 갈림길에 선다. 그는 극 중 '경수'가 겪는 고민과 갈등을 두고 "영화 속 삶이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속 '경수'는 어떤 상징과도 같죠. '절대 권력자'인 왕과 그 주변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을 '약자 중 약자'인 '경수'가 목격한다는 게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이 스크린 밖의 우리와도 닮았다고 여겼고요. '경수'의 선택에 존경심이 생겼고 납득이 됐어요. 그가 '제가 보았다'고 한들 아무것도 바뀌지는 않잖아요. 그가 발언한다고 해서 왕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죽은 '소현세자'가 살아나지도 않잖아요? 그런데도 '경수'는 '보았다'고 말해야 했고요. 우리 삶도 그래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죠."
류준열은 인터뷰 내내 자기 자신을 '게으르다'고 표현했다. 데뷔 7년 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류준열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게으른 배우'라는 말이 쉬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게으르다고 해서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촬영을 시작한 후에 대본을 잘 읽지 않는데 그런 걸 보면 '게으른 편인가?' 싶기도 한 거죠. 부지런히 치열하게 잘해보려고 할 때마다 역효과가 났어요.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요. 즐기면서 편안하게 해야 결과물이 좋았기 때문에 안 풀리거나 잘 안 되는 일은 억지로 잡아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데뷔 7년째인 그는 배우로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카메라 안팎에 관한 고민이었다.
"저는 앞만 보고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주변을 잘 둘러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요즘 촬영이 끝날 때면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고요. '더 잘해 줄걸' 후회하기도 하고요. 다른 게 배려가 아니라 함께 일할 때 즐거우면 그게 진짜 배려가 아닐까 싶어요. 요즘 현장에 가보면 저보다 10~20살 어린 친구들도 만나곤 하는데 그 친구들을 보면 선배님들께서 제게 남겨준 좋은 기억을 함께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1986년생인 류준열은 내년이면 38살이 된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고 말문을 뗀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며 반성할 일들만 늘어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릴 때는 과거 제 행동에 관해서 '그게 나지' '내 모습인데 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제 모습이 참 어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 순간이 쌓여서 제가 되었지만 한 끗 차이로 잘못된 점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죠. 과거 내 모습을 떠올리며 반성할 때마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싶어요."
그는 "배우로서 철드는 게 무섭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철드는 걸 막을 수는 없다"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은 시간도 순리대로 흘려보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아버지께서 늘 그런 말씀을 하세요. '순리대로 살라'고요. 순리라는 게 정직일 수도 있고, 하늘이 내린 운명일 수도 있는데 흐르는 대로 정직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 제가 원하는 길로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