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명품 한류의 근원, 홍익인간 정신과 '코리안 드림'

2022-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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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건설노동자]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US News & World Report에서 발표한 2022년 세계 10대 강국(the World's most powerful countries)에 한국이 6위로 랭크되었다(1위 미국, 2위 중국, 3위 러시아, 4위 독일, 5위 영국, 6위 한국, 7위 프랑스, 8위 일본, 9위 아랍 에미리트, 10위 이스라엘). 믿기지 않는 순위지만 산출 근거로 대상 국가의 세계 주요 뉴스에 노출되는 빈도, 정책결정권자의 영향력, 세계 경제에 대한 기여도, 외교정책, 군사예산 규모, 국제사회에 주는 신뢰도 등을 주요 고려 대상으로 하여 매긴 순위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꽤 높아 보인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이 밖에도 문화 영향력(Cultural Influence)에서는 세계 7위,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선 세계 6위를 차지한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제는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외부에선 이렇게 우리나라를 높이 평가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국제적 순위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대하면서도 우리 자신은 이런 결과를 잘 믿으려 하지 않으며 우리가 선진국 시민이라는 그런 느낌도 없다.
남들은 우리나라가 세계를 리드할 만한 리더십과 뉴스 생산력 그리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었다고 보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엔 아직도 이 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남아 있으며 봉건적 형태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반제·반봉건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노사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와 배분 문제, 그리고 정당 간 극한 투쟁을 보면 솔직히 우리는 선진스럽기보다는 후진스럽기 짝이 없다. 그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라는 자부심이 국민적 자부심이 되지 못하고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었고, 그 국민적 성과에 나라고 하는 개인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늘 우리는 어느 계층에 있든 소외감을 느낀다.
 
우리라는 우리
우리는 조직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 ‘내부총질’이라는 거친 용어를 쓴다. 내부 비판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작은 조직이나 큰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왕따’라는 따돌림으로 나타나고 종교계에서조차 다소 다른 의견을 내거나 의견 일치가 되지 않으면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세운다. 이렇게 나와 같지 않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조직의 ‘순혈’ 혹은 단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아무래도 이런 사고를 가지게 된 데에는 우리의 생활환경이 협소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국토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외부와 교류가 적어지면서 우리는 작은 우리 안에 갇혔기 때문이다. 국토의 분단은 우리의 의식까지 이렇게 소심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우리라는 말에는 너와 나라고 하는 구분이 있어야 함에도 너와 나는 언제나 같은 시각, 같은 사고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잠재해 있다. 엄연히 너와 나의 생각이나 취향이 다른데도 말이다. 우리라는 말은 너와 나로 분립된 자기 주도적 독립된 자아가 다시 만나 우리가 되는 것이다. 각자의 독립된 자아가 서로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필요가 있어야 하며 인정과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해외에서 이주해온 다문화가정, 중국의 조선족, 그리고 북에서 온 탈북민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는 다양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이 다양함에서 우리는 우리의 단일주의 의식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가 우리 사회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되었다.
며칠 전 나는 한 탈북민을 만났다. 1997년에 왔으니까 벌써 25년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탈북민이다. 북한처럼 이남에도 출신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뗄 수 없는 사회라면 탈북민을 대하는 남한 사람들의 시각이 변하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 이야기를 좋아해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탈북민이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을 비난하면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면서 상대가 엄청 화를 낸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본인들도 한국 정치와 정치인들을 맹비난하면서도 탈북민이 그들을 비난하면 “너는 뭐 하러 남에 왔니? 그리 싫으면 북으로 돌아가라”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자신을 같은 주민이나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방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탈북민을 도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우린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릴 ‘먼저 찾아온 통일’이라며 우리를 치켜세우지만 그 말은 우리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하지 통일의 동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지 말고 사명감을 주어라. 동정이나 온정을 베풀지 말고 일자리를 주어라. 탈북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들어보려 하지 않고 정부나 교회는 우리에게 교육만 시키려 한다.”
탈북민들이 ‘먼저 온 통일’ 맞다. 통일은 나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삶을 존중해주면서 더불어 사는 삶이다. 지금 북에서 살고 있는 조선 인민들을 생각하면 탈북민들은 자기 삶의 의지와 결정권을 더 강하게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과 하나 못 되는데 어떻게 북한과 통일할 수 있겠는가. 교육은 우리가 받아야 한다. 성장과 삶의 환경이 전혀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교육은 우리가 필요하다. 같이 사과도 따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같이 체육대회도 하고, 같이 김치도 담그며 사고의 방식은 다르지만 더 나은 나라와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비전으로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민족의 비전, 코리안 드림
우리 민족의 시원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먼 옛날 단군이라는 분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셨다는 역사 기록으로 우리는 반만년 전 옛 조선을 우리 민족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며 우리 선조들은 국난을 당할 때마다 이 건국정신을 되새기며 견디고 싸워 이겨 나왔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내외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이때에 우리를 다시 하나 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우리 역사의 첫 출발지인 건국정신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온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다(홍익인간). 그러기 위해 참된 진리로 다스리겠다(제세이화)”며 빛나는 아침의 나라(조선)를 열었다는 이 이야기는 사실 서구 민주주의 기틀이 된 미국 독립선언서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이 한 문장보다 더 미려한 선언문이 아닌가. 이 건국의 비전은 현재 남이나 북이나 같이 배우고 있고 나아가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이야기다(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은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실제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한류가 얼마나 세계인들의 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이는지 잘 모른다. 멋 옛날 주변국에서 우리 민족을 평할 때 ‘접화군생’ ‘군취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그저 집단적으로 음주가무를 좋아했다는 말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해 그동안 우리 스스로를 열등민족으로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접화군생(接化群生)이란 말 속에는 집단 속에 파묻혀 갈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대중 사회에서 창조적 개인으로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개인과 집단이 유기적이고 교호적 상호관계를 맺으며 이를 협동적으로 진전시킨다는 화합과 상생의 사상이 깃들어 있으며, 요즘 한류는 이러한 사상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 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평했다. 우리는 이집트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거나 로마의 도로와 건축물,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 빼어난 유산을 만들거나 거대한 제국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뜻이 ‘아가페’라고 한다면 우리는 신의 사랑을 제대로 찾아 나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가시 없는 장미를 볼 수 없듯이 아픔 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만날 수도 없기 때문에 인류역사 자체가 고통의 길이요, 수난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역사를 타고르의 <기탄잘리>에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야말로 큰 길가에 앉은 거지 처녀다. 수난의 여왕이다. 선물의 꽃바구니는 다 빼앗겨버리고 분수 없이 왕후를 꿈꾼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애끓는 지친 역사다. 그래도 신랑은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 역사가 고난의 역사라고 말한 것은 우리 건국의 선조들의 건국이념이 실현되지 못한 채 외세에 의해 고조선이 망하고 400년 만에 다시 일어섰으나 삼국으로 쪼개지고, 다시 고려로 쪼그라들고 조선에선 더 왜소해지고 약화돼 끝내는 일본에 국체를 빼앗기고 신음하다가 마침내 독립을 이루었으나 우리의 꿈과 기상은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분단되는 이 슬픔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뜻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관통하는 그 뜻이란 무엇이냐, 바로 홍익인간의 비전을 실현하여 하늘이 곧 사람이라는, 모든 사람들이 하늘의 마음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여 이 땅에 평화세계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한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역사를 통해 패망과 죽음과 온갖 실패의 시련을 겪게 하고 견디게 하며 이 민족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이 민족을 세계적인 선도국으로 만들기 위해 하늘은 어떤 뜻을 한반도에서 진행해 왔는지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자.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으로 검역(Quarantine)과 격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쿼런틴의 어원은 40일 분립을 의미하며 그 어원은 성서에서 왔다.
성서에서 40일의 예를 보면 노아 때에 방주(方舟)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 40일 기간, 모세의 바로궁중 40년, 미디안광야 40년, 가나안 복귀의 광야(曠野) 40년, 예수의 광야고난 40일, 부활 후 40일 등 40수는 고난을 통한 분립 혹은 새롭게 나아감의 의미가 있다. 이 40수의 의미를 우리 역사에 대비해 보면
1905년 을사늑약은 실제로 국권이 상실된 것으로 보아 1945년 광복될 때까지 40년간은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기로 민족의 암흑기, 1985년까지 한반도의 분단기, 그리고 2025년까지 통일기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2025년까지는 우리는 어떻게 하든 통일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역사의 뜻이 있다.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많이 애썼지만 우리 힘으로 독립을 맞이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갑자기 찾아온 독립은 광복 후 엄청난 혼란기를 가져왔다. 이 혼란의 와중에 남과 북은 3년 후 정식으로 정부를 출범시키고 전쟁까지 치르게 되어 분단은 고착화되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1985년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처음으로 상봉하고 예술단의 상호 교환 방문으로 남북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3년 후인 1988년엔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공산과 민주 진영의 냉전 종식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제 3차에 걸친 40년이 지나는 2025년까지 3년 남았다. 지금 상황은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며 핵개발로 세계를 위협하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지만 지금 이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 현상 추이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대만 침공설 등 국제 상황은 어떻게 요동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혼란한 때에 우리는 노자가 말하듯 우리 민족의 근원, 원점으로 돌아가 민족의 비전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옛적의 어느 날, 만주 평원의 거친 풀밭 위에 먼동이 틀 무렵 훤히 밝아오는 그 빛이 흥안령 마루턱을 희망과 장엄으로 물들일 때 몸집이 큼직하고 힘줄이 울툭불툭하고 널따란 이마에는 어진이의 기상이 서려 있고 눈빛에는 날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사람들이 솟아오르는 해를 향해 “홍익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하나님 같이 서로를 섬기며 광명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 위대한 함성. 이제 지난했던 고난의 역사를 뚫고 홍익인간이라는 ‘코리안 드림’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때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는 한류문화, 이것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인류보편적 가치인 이타정신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두수 작가 제공] 

필자 소개 - 이두수(54)는 5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 현장의 삶과 애환을 그림과 글씨로 표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기 전 시민단체인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8년간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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