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南 참사 애도기간에 北은 '막무가내' 미사일 도발

2022-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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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극동대 교수]

 
이태원 참사에 대해 북한은 끝내 어떤 애도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도 위로의 말을 전해왔지만 북은 침묵했다. 대신 미사일만 쏘았다. 애도기간인데도 개의치 않았다. 같은 민족의 비극적 참사에 미사일 세례로 대응한 꼴이다. 도중에라도 잠시 멈추고 애도를 표했어야 하지 않을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위협하더니, 곧바로 조전을 보냈다. “희생자 유족과 친구들, 다친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보내며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
북의 미사일 공세는 대한민국에 대한 ‘2차 가해’였다. 이태원 참사로 패닉상태에 빠진 우리에게 애도의 성명 한 장 없이 미사일을 퍼부었다. 저들이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던 그 동족인가 싶을 정도다. ‘참사와 미사일’ 사이에서 우리는 북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대응을 재점검하도록 요구받는다.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미사일 세례
 
북은 갈수록 막무가내다. 지난 2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는 등 10시간 동안 25발의 미사일과 대포 100발을 쏘았다. 3일에도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과 단거리탄도미사일 5발을 날렸다. 한-미가 연합공중훈련(비질런트 스톰)을 연장키로 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북의 박정천 당 군사위 부위원장은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겁박했다.
 
무엇이 북을 이처럼 천방지축 오만불손하게 만들었을까. 원래 ‘버릇없는 아이’(spoiled son)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갈수록 커지는 남북 간 격차 앞에서 느꼈을 초조함이 핵(核)과 결합하면서―더 정확히는 핵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과거와는 사뭇 다른 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북이 마구 쏘아댄 미사일은 초조함의 표시이자 자신감의 과시로 보인다.
 
한 세대 가까이 북을 선의(善意)로 대하면 북도 달라질 거라는 착각이 남북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고착시키고, 끝없는 대북 굴종을 낳았다. ‘햇볕을 쪼여야 북이 외투를 벗을 것’이라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각은 말 그대로 우화(寓話)에 그쳤어야 했다. 그게 절대시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햇볕정책은 질이 나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의 하나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북의 핵 보유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됐다. 햇볕정책이 갖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취지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마저도 북핵과 미사일 앞에서 휴지가 됐다.
 
문재인 정권 때, ‘김여정 하명법’으로 조롱당했던 대북전단금지법이나, 북이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했던 입에 옮길 수도 없는 막말을 생각해보라. 국민의 피 같은 세금 235억원을 들여 개성에 세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이 일방적으로 폭파했을 때 우리는 응징은커녕 항의다운 항의 한번 못했다. 그 대가가 북의 핵무장이고 미사일 세례다. 이게 정상적인 남북관계인가.

햇볕정책 30년, ‘설거지’는 누가?
 
북한은 2003년 대구 지하철,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애도를 표했다. 1984년 우리가 수해를 입었을 때는 쌀, 시멘트, 옷감(포플린)을 보내오기도 했다. 북은 당시 전두환 정부가 자신들의 수해지원 제의를 전격 수용하자 내심 당황했다고 한다. 그때도 형편이 어려웠던 북은 구호물자 마련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그 성의(誠意) 덕분에 그해 11월 남북 경제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풀렸다.
 
이제는 이런 공존 공생의 남북관계를 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핵폭탄과 미사일을 머리에 인 북과 무슨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햇볕정책 30년, 누구는 즐겼고, 누구는 감격했다. 하지만 부(負)의 유산은 오롯이 남았다. 설거지는 늘 보수정권의 몫이었다. 햇볕잔치는 끝났고, 윤석열 정부도 그 어깨가 무거워졌다.
 
북의 NLL 이남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실질적 영토 침해”로 규정하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한 대응이다. 핵 공론화도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핵 공론화는 확장억지의 강화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제는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독자 핵무장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북으로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북이 도발하면 할수록 한·미동맹은 굳건해진다. 핵억지(핵우산)도 강화된다. 이 ‘안보 딜레마’가 몰고 올 군비 상승을 북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북, 미사일 비용 감당하다 內破될라
 
북이 지난 2일 하루에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25발을 돈으로 환산하면 7500만 달러(약 1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미사일 1발에 200만~300만 달러 꼴이다(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3일 자유아시아방송). 이 정도 비용이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가부도로 인한 내파(內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암호화폐 해킹으로 그 비용을 댄다지만 서방 국가들이 보고만 있겠는가.

핵 공론화 중 확장억지, 곧 기존의 핵우산을 더 넓고 두텁게 펴야 한다는 데 대해선 한·미부터가 이론이 없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자체 핵보유에 대해선 한·미는 물론 우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반대하는 쪽은 북의 핵보유를 정당화시킴으로써 한반도의 비핵화를 어렵게 만들고,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시킬 거라고 우려한다. 미국의 반대를 꺾기도 어렵거니와 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전술핵 재배치도 어려운데 자체 핵무장이라니, 현실성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독자 핵무장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핵 개발이 임계점을 넘었고, 이제 완전한 비핵화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전략목표는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핵 억지’의 제공으로 (이를 위해) 모든 핵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고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북이 핵무기로 미 본토를 위협할 때 과연 미 대통령이 북한과의 핵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핵 보복을 결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독자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4일 국방안보포럼).
 
어느 쪽이 우리의 안보와 미래에 더 적실성을 갖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 등 국제체제로부터의 반대 압력 때문에 핵무장을 못하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후(戰後) 70년이 넘도록 세계가 인류사에 드물게 긴 평화의 시대를 누려온 것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아닌 핵무기에 기초한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확장억지 속에서 NCND의 핵 옵션을

그럼에도 북의 미사일 사태로 한층 강화된 확장억지가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굳이 핵무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미는 3일 끝난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확장억지의 일환으로 미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가 있도록 운용하기로 합의했다. 확장억지 제공 과정에서 한국의 관여도 보장키로 하는 등 미국은 독자 핵무장만 빼고는 뭐든지 다 들어줄 태세였다. SCM 공동성명에 “김정은 정권이 핵공격을 하면 종말을 맞을 것”이란 경고를 처음 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공동성명에는 (핵 억지에 관한) 선언적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면서 “미국의 어떤 강한 말도 ‘핵 있는 북한과 핵 없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달라진 안보환경 아래서 독자 핵무장 외에 믿을 만한 무슨 방책이 있느냐는 얘기다.
 
결론은 분명하다. 양측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든 접점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강화된 확장억지를 더 강화하고, 그 아래서 독자 핵무장은 NCND의 전략적 기술적 옵션으로 놔두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어떻든 지난한 일이다. 햇볕에 취해, 이대로 가면 북이 핵보유국이 되고, 조국의 안보와 미래, 그리고 운명까지 그 하위변수가 되고 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의 가책 소리가 크다.
 
실로 기이한 시절이었다. 구차한 대북 굴종주의자들은 ‘평화세력’이고, 원칙을 지키고, 남북 간 형편에 맞는 융통성 있는 상호주의로 가자는 사람들은 ‘전쟁세력’으로 몰렸다. 이에 복무했던 그 많은 구루(guru)들은 오늘 북의 미사일 세례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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