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민은 민생을 말하는데…귀 닫은 여야

2022-10-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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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앞에는 노숙자들이 종이박스를 이불 삼아 몸을 누이고 있었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6도였다.

서울역 안, 커다란 TV 앞 의자에 시민들이 열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뉴스를 보는 사람은 첫 줄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뿐.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지난 2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 사건과 관련 특별검사제(특검) 도입을 요구한 특별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후 1시경 민심을 듣기 위해 서울역을 찾았다.

“요즘 TV만 보면 화가 나요. (국회의원)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하더만.”

“특검 도입이 이렇게 중요한 사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경제나 신경 썼으면 좋겠네요.”

이날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처럼 무관심했다. 특검 도입이 뭐냐고 되묻는 시민들도 다수였다. 그럴 때마다 대장동 사건부터 특검 도입 과정까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무관심 속에서도 한 가지 중론이 있다면 바로 정치권을 향해 민생을 잘 챙기라는 말이었다.

민생(民生)이 언제부턴가 정생(政生)이 됐다. TV만 보면 화가 난다는 시민의 말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국민은 민생을 말하는데, 정치권은 귀를 닫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이 국민의 삶이 아닌 정치 인생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여야 간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을 2022년 뿌리 내린 정생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검찰의 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 압수수색 등을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재정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약자 복지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 채무 1000조원, 연금 문제 등 재정 불건전성은 물론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예산 심의권을 가진 정당이 시정연설을 보이콧하는 것이 '민생 외면'이라고 비판받기에 충분한 이유다. 특히 민주당은 169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다. 집권여당과 거대야당의 협치가 없다면 예산안 심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민생 외면 행태도 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 징계를 둘러싸고 내홍이 심각했다. 당의 내분에 더해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등으로 하락세인 지지율은 쉽사리 오르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6월 3주 차 43% △8월 1주 차 24%로 나타났다. 10월 4주 차에는 소폭 반등했지만 30%에 그쳤다.  

여야가 말하는 변화는 허울뿐이었다.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는 '비호감 대선'으로 불렸다. 흔히 선거는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유독 올해가 그러했다. 대선 직후 여야는 한목소리로 민생을 중요시하겠다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되레 여당은 당내 분열로 지도부가 바뀌는 부침을 겪었고, 야당은 정권과의 투쟁을 선포했다. 국정감사장도 구정권과 신정권의 기싸움이 난무하는 정쟁(政爭)의 장으로 변질됐다.

민생에 집중하라는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고충을 눈으로 확인하고, 앞으로의 대안을 입으로 말할 때다. 서울역, 대학로, 서대문구 영천시장 등에서 만난 시민들은 여야를 향해 “경제에 더 집중하라”고 입을 모았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으로 국민이 연일 고통받고 있다. 무역수지 6개월 연속 적자는 물론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는 등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지금 이재명발 특검 도입 논란이 중요한 게 아니다. 여야는 정쟁을 멈추고 민심에, 민생에 집중하길 바란다. 
 

[김서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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