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은 67세로 '7상8하(당대회 기준 67세까지 상무위원 가능, 68세 이상은 퇴임)' 불문율에 의해 상무위원에 잔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내년 3월 양회에서 퇴진할 것으로 보인다. 리커창 총리의 후임은 리창 상하이시 당서기가 선임된 것으로 보인다.
리커창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영향력에 밀려 역대 최약체 총리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사실 지난 2013년 전인대에서 리커창이 총리로 선출돼, 중국의 2인자 자리에 올랐을 때만 해도 '시리주허(習李組合)'로 불리는 시진핑-리커창의 쌍두마차 체제가 향후 새로운 10년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왔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5년 이후 중국에선 경제뿐 아니라 군사, 외교에 이르기까지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수십 개 위원회와 영도소조가 출범했다. 시 주석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리커창의 존재감은 점차 사라졌다.
그러면서 그는 "리 총리가 상사(시진핑)에게 짓눌리고 밀렸다"고 평가하면서 "진정한 개혁가였던 주룽지나 세계 경제의 모멘텀에 올라탔던 원자바오와 비교할 수 없다. 리 총리는 어떠한 장점도 없었고 그저 '명목상의 최고위자(figurehead)'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리커창 총리는 힘없는 총리로 갈수록 명목상의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그쳤고, 시 주석의 정책을 집행하는 데만 집중했다. 국가 부문에서 어려운 개혁을 추진했던 주룽지(朱镕基) 전 총리와,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원자바오 전 총리에 비해 총리가 재임했던 지난 10년 동안 중국이 정치 개혁 측면에서 거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매그너스 센터장이 짚었다.
상하이정치법률대 교수를 지냈던 정치 평론가 천다오인은 리 총리가 국무원 행정권을 위해 싸웠어야 했으며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이 1980년대 당 간부들의 정부 개입을 막기 위해 만든 개념인 '당과 정부 사이의 분리' 원칙을 옹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 총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비록 중국의 정치 서열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그는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 아닌 그저 '공무원'에 그쳤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전임자들과 비교했을 때, 리커창 총리가 가장 영향력이 없는 총리였다"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