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국가 이미지 만드는 정치 지도자의 덕목

2022-10-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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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해외 방문 후 불거진 소위 외교 실패 논란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어 국력을 갉아먹는 형국이다. 여야의 대립은 극에 달해 모두 일전을 불사할 태세이고 이 와중에 민생과 경제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최근 폭락하는 원화 가치와 주식시장, 그리고 고물가까지 덮치면서 일부는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하는 수준이다. 사실 정쟁으로 맞붙은 여야의 모습은 1997년 외환위기 전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윤 대통령의 외교 실패 논란이 한국의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볼 문제다.

핵심은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 실패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환담한 후 비속어 발언이 윤 대통령 개인과 한국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하는 문제다. 대통령 개인 이미지에 손상을 입힌 것은 명확해 보인다. 또 그로 인해 한국 이미지가 실추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것이 외교 실패 혹은 참사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외부에서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 외부에서는 국내 언론의 논란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외신 보도를 살펴보면 이는 잘 드러난다. 바이든 대통령과 환담한 후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 혹은 한국 국회를 향해 발언했다는 비속어에 대해 영국 BBC는 이를 idiot, 즉 '바보 천치'라고 번역했다. 대다수 외신들이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강한 bastard, 즉 (개)자식이라는 용어로 번역했다. 어떤 경우라도 한국 대통령의 언어가 정제되지 못하고 저속적이고 원색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해외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윤 대통령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3월 대통령 선거와 5월 취임을 전후한 외신 보도를 보면 윤 대통령 이미지는 대개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투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이다. 특히 20대 남성들에게 지지를 얻기 위해 남녀 간 갈등을 마다하지 않는 반페미니스트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그로 인해 일부 외신은 그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비교하기까지 했다. 미국 시사지 타임은 그를 ‘포퓰리스트’로 묘사했다.

해외에서 윤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이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8년 동안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싸운 검사의 모습도 부각한다. 특히 갖은 압력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임명권자 측근의 부패를 파헤친 점은 높이 평가한다. 또한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만 매달렸던 데 반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국제주의자’라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평가는 부수적이고 대부분 앞의 부정적 이미지에 묻혀 실종되고 만다.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정치 경험이 짧고 막판에 선거에 뛰어든 관계로 윤 대통령이 대외 이미지를 구축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전임 문 대통령은 오랜 정치 생활을 통해 충분히 자기 이미지를 구축해 온 바 있다. 취임식에 맞춰 발간된 타임지 표지 기사에서 그는 협상가(negotiator)로 묘사되는데 이는 문 대통령 측근들의 오랜 이미지 구축 작업에 따른 결과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남북한 및 북·미 대화를 성사시켜 이러한 이미지가 타당하다는 점을 보였다.

그러나 북·미 대화가 실패로 끝나고 남북 대화가 단절된 현시점에서 문 대통령의 그런 이미지는 크게 퇴색했다.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 이미지 역시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바뀔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의 한 연구는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소위 스필오버(spillover) 효과 때문에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가 국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점은 이미 확인된 바 있지만 문제는 정치 지도자의 어떤 덕목이 국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 프리보그(Fribourg)대학의 다이아나 잉겐호프(Diana Ingenhoff)와 수잔 클라인(Susanne Klein) 교수는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세 가지로 나누는데 사회적 인지(social cognitive) 차원인 성실성(integrity), 기능적 인지(functional cognitive) 차원인 능력(competence), 그리고 감성적 표현(affective expressive) 차원인 카리스마(charisma)다. 연구 결과 무엇보다 지도자의 성실성 이미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그다음이 능력(자질), 카리스마 순이다. 결국은 정치 지도자의 장기적 성실성이 한 나라의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의 카리스마나 자질에 대해 해외의 평가가 인색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임기 초반이기 때문에 성실성의 측면은 평가가 유보된 상태로 보인다. 결국은 앞서 윤 대통령의 긍정적 요소로 부각된 부패 척결이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 협력 분야에서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성과를 보인다면 그의 이미지, 아울러 한국의 이미지 역시 개선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취임 초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윤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링컨 대통령은 재임 시 남북전쟁을 치르며 많은 정적을 만들었고 결국 암살되고 만다. 그러나 사후에는 연방제 확립 등 그가 이룬 성과로 인해 가장 사랑받는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 되었다. 링컨 대통령처럼 윤 대통령이 초기의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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