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외환당국은 그동안 원·달러 환율 급등세에 대해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며 시장 안정 메시지를 던져 왔지만 환율은 아랑곳없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위기론’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가 하면, 정책당국의 가감 없는 소통과 한·미 통화스와프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방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6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한 달새 1350원대에서 1430원대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에 대해 “물가나 교역비중 등을 고려한 실효환율의 절하폭은 크지 않다”면서 “높은 대외신인도 유지와 더불어 외화자금 조달여건도 양호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환율 상승에 대한 과도한 불안은 불필요하다”며 환율 및 외환시장에 대한 안정세를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대다수는 현 환율 상황에 대해 심상치 않다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외환)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느냐 여부는 통상 베이시스 스와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이 수치가 1%가 넘으면 굉장히 조심해야 할 경계선"이라며 "그런데 지난달 말에 1%를 넘었고 지난 21일에는 1.32%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이 수치가 올라간다는 것은 국내 외환유동성이 점차 고갈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현 외환시장 동향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갖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한은은 세계 9위권 외환보유고 규모 자체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내 외환보유고는 GDP의 27% 수준에 그치는 반면 국내 GDP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스위스의 외환보유고는 그 비율이 143%에 달하고, 과거 외환위기 파고를 잘 넘긴 대만 역시 GDP 대비 외환보유고 비율이 90%가 넘는다”면서 “그만큼 우리나라 대비가 미흡했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통화긴축 과정에서 국내 통화당국의 대처가 미흡했던 점도 지적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특별한 사건 없이 환율이 계속 올라 1400원대를 돌파했다는 것은 경제 환경의 변화를 한국이 쫓아가지 못했다는 의미”라면서 “글로벌 경제가 격동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밖에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한은의) 메시지는 국내 통화가치를 더 급격하게 떨어뜨릴 수 있는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도 한은의 포워드 가이던스와 관련 “지금의 상황 자체가 정책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여건 변화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그에 따른 시장 대비를 명확하게 요청해 둘 필요가 있었다”며 “물론 그간의 한은 총재 발언에 이러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지만 점진적 베이비스텝(25bp) 인상에 대한 시그널이 강력하다보니 상황 변화에 대한 전달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며 대응에 아쉬움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와 외환당국이 꺼내든 대응책으로는 환율 안정에 있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면서 외환보유고의 현금 비중 확대나 한·미 통화스와프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성태윤 교수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를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면서 "현 통화당국과 행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수 명예교수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여건을 보면 현 상황이 단기간 내에 개선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 "현 상황에서 가장 좋은 대책은 달러를 공급하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이라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한미 통화스와프 현실화 여부에 대해서는 "지난 5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양국이 외환시장 안정에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를 근거로 정부가 (통화스와프 관철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