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공작'으로 한국 누아르 장르의 대표 윤종빈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다.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 주간 글로벌 1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수리남'이 공개된 뒤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초등학교 동창들에게도 연락받았을 정도예요. 얼마 전 니콜라스 케이지도 '수리남'을 보았다고 글을 썼던데···. 신기하더라고요. 저도 그분의 열렬한 팬이거든요."
윤종빈 감독은 '수리남' 연출을 제안받고 한 차례 거절한 바 있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다룬 작품인 데다가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영화' 제작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윤 감독은 '강인구'(하정우 분)의 전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수리남'에서 '강인구'의 전사를 풀어내는 게 기존 언더커버물과 차별점을 둘 거라고 여긴 것이다.
"제가 시리즈를 고집한 이유기도 해요. '강인구'는 왜 언더커버를 하게 되었을까? 인물의 전사를 다 자르고 2시간 분량으로 줄인다면 변별력이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처음 '수리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황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문서로 정리된 걸 보았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했어요. 너무 영화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윤 감독은 실제 K씨를 만나고 모든 의문을 거두었다. 윤 감독이 묘사한 K씨는 강인한 외모와 풍채를 가졌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K씨를 보고 "충분히 이런 일을 하실 수 있겠다"며 모든 걸 이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인구'의 전사는 K씨의 이야기를 많이 차용했어요. 남들과 다른 삶을 사신 분이에요. 강인하게 살 수밖에 없으셨죠. 그분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니 납득이 가더라고요. 시종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강인구'에게도 그런 점을 반영하려고 했어요. '강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점을 설명해야 시청자들 역시 저처럼 납득할 거라고 보았거든요."
너무나 영화 같았던 K씨의 이야기는 오히려 드라마로 만들기 어려웠다. 영화적 클리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K씨가 조봉행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보여준 일들은 우리가 누아르 영화에서 많이 보던 일들이에요. 일부러 중국 갱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요. 이건 꼭 영화 '디파티드'의 디카프리오 같잖아요! 이야기 그대로 드라마에 담을 수 없어서 오히려 덜어내는 작업을 했죠. 그러면서 '강인구'의 캐릭터가 유머러스하고 능글맞아지기도 했고요."
"'강인구'는 '나는 아버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캐릭터예요 하지만 결국 그 역시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죠. '부성'이 '수리남'의 큰 테마는 아니지만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빠질 수 없게 되었어요. 실제로 K씨가 그랬듯 '강인구'에게도 (언더커버 활동을 하는) 원동력이니까요."
윤 감독은 실제 아버지가 되고 작품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범죄와의 전쟁'과 '수리남'이 다른 건 제가 아버지가 되었다는 점이죠. 아마 그 경험이 작품에도 반영되었을 거 같아요."
윤 감독은 극 중 '전요한'(황정민 분)과 '강인구'는 돈에 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데가 있지만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달라지는 건 '선' 때문이에요. 한 명은 선을 넘고, 또 다른 한 명은 선을 넘지 않죠. 저는 그게 '아버지'와 '아버지가 아닌 자'라고 생각해요. '강인구'는 아버지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았고, 자기 딸 같은 꼬마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 인물이에요."
'수리남'은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장첸 등 입이 떡 벌어지는 배우 라인업을 자랑한다. 윤 감독은 "모든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지만, 하정우와 황정민이 만날 때면 언제나 놀라곤 했다"며 배우들의 환상적인 호흡이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했다고 칭찬했다.
"하정우·황정민씨는 연기 스타일도, 성향도 매우 달라요. 황정민씨는 모든 걸 잡아먹는 불같은 연기를 보여준다면, 하정우씨는 유연하고 능청스러운 물 같은 모습을 보여주죠.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을 지켜보면서 '생각보다 더 잘 맞는데?' 감탄했어요."
그는 '첸진' 역을 맡은 배우 장첸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캐스팅에 매우 공을 들였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극 중 '첸진'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핵심 인물이잖아요. 존재감이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번뜩 떠오른 게 장첸씨였고 열심히 설득했죠. 직접 만나서 '당신이 보았을 때 이 역할이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사정했어요."
"'수리남'을 만들면서 오히려 영화 작업에 대한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아, 내가 하던 일이 그런 일이었지' 새삼 깨달았어요. OTT와 달리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큰 화면으로 보면 작은 디테일이 눈에 띄니까 더욱 집착하고 꼼꼼하게 만들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서도 윤 감독은 '극장 영화'에 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는 거 같아요. 요즘 제가 느끼는 건 '극장 영화'가 어떤 장르화되어가는 거 같아요. 블록버스터나 스펙터클을 강조한 작품으로 한정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과연 내가 그걸 하고 싶은가?' 질문을 던져본다면 그건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아직도 고민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