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었던 지난 3월 20일, 청와대에 있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발언한 내용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여기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 후 윤 대통령이 국민들과 함께 출퇴근하는 모습, 출근길에 기자들과 진행하는 도어스테핑(약식회견) 등도 역대 대통령들이 보여주지 못한 파격적인 소통시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한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변에 누가 있는지, 평소 누구와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의식은 큰 영향을 받는다. 이른바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이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정부를 '검찰 특수부 출신의 검피아(검찰+마피아)'와 '엘리트 관료 출신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의 연합정부로 표현한다.
대통령실의 핵심 요직은 윤 대통령이 검찰에 있었을 때 손발을 맞춘 검사 후배, 검찰 수사관, 실무관 등으로 채워졌다. 윤재순 총무비서관,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강의구 부속실장 등으로, 야당에서는 이들을 검찰출신 '문고리 육상시'로 부른다.
국가 주요 정책을 조율하는 대통령실의 대통령비서실장(김대기)과 경제수석(최상목), 그리고 내각의 국무총리(한덕수)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추경호)은 모두 모피아로 분류되는 인사다. 이 자리들을 모두 모피아로 채운 것은 유례가 없었다. 이밖의 장차관급에도 검찰 및 모피아 출신들이 대거 발탁됐다.
윤 대통령은 "실력을 중심으로 인선했다"고 자신한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며, 자신과 비슷한 철학과 사고를 공유하는 이들을 발탁해 국정을 운영하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책임 의식도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슷한 사람들만 끼리끼리 모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집단사고의 오류'다. 여기에 검찰과 모피아 모두 끈끈한 선후배 관계를 자랑하며 '전관예우'로 대표되는 일종의 '기득권 카르텔'을 유지해온 집단이다.
결국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이며 메시지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오랜 세월 집권해 이권을 나눠 먹은 카르텔 기득권 세력을 박살 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말이 꼭 지켜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