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30주년 스페셜 칼럼] 미·중 갈등 틈새에서 한·중 관계 전략적 리셋

2022-08-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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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수교했다. 금년 8월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된다. 그간 한·중 관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 우호 협력적인 관계에서 2000년대 들면서 본격적인 상호 경제적 의존과 분업 관계를 형성했다. 한·중 관계를 규정하는 개념 역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기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이 시기 한국은 중국의 급속한 부상으로 가장 혜택을 받은 국가였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그리고 급속히 성장하는 시장이 바로 이웃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막대한 무역 흑자는 거의 중국에서 왔다. 1990년 말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외생적 변수로서 중국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한·중 관계에서 갈등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협력이 주였다.

한·중 관계는 공교롭게도 미·중 관계 변화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미·중 전략적 협력 관계 시기에 한·중 관계 역시 협력 수준이 깊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중 관계가 점차 경쟁 관계로 전환하자 한·중 관계에도 위기가 발생했다. 2016년부터 본격화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은 한·중 경제와 무역 관계에도 구조적인 변화를 수반하게 하였다. 상호 보완적이던 경제무역 관계는 점차 경쟁적인 관계로 전환했다. 이제 한국과 중국은 전 세계 4차 산업혁명과 제조업 주요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 관계에 돌입하고 있다. 미·중이 전략적 경쟁 시기로 접어들면서 한·중 관계 역시 정치·군사·외교·무역 모든 측면에서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2017년 12월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미·중 전략 경쟁의 시대를 선언하면서 세계는 현재 미·중 전략 경쟁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패권 경쟁이기도 하고 세력 전이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민주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라는 이분법적인 대결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중국의 영향권, 그리고 이에 전적으로 편입되지 않은 중간 지대로 구분한다. 중간 지대에 대한 영향력 경쟁이 결국 미·중 전략 경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는 듯하다. 2022년 발생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세계 질서가 크게 미국 중심, 중국 중심, 서유럽, 그리고 러시아 등 4대 영향권으로 나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글과 같은 강대국 간 경쟁과 전통 지정학이 국제정치에 다시 주요 흐름으로 복귀했다. 향후 세계 질서는 다극화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하다.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외 정책과 국내 정치의 대립과 혼란은 이러한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전략보고서들 역시 이러한 추세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 대단히 강력한 외교·안보·경제적 시련과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한국은 그간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하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였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하였고, 최근 정보화와 디지털화에도 가장 성공적인 국가가 됐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영역인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선도적인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 국력 면에서 볼 때 경제력은 세계 10위권, 무역 규모는 세계 8위권, 군사력은 세계 6위권으로 아마 단군 이래 이처럼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를 수립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발생하자 국내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동맹을 더욱 강화하거나 아니면 이제 중국에 대한 편승을 고려해야 한다는 단선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가 강하다.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팀은 전자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최대 외교안보적 도전은 한·중 관계에서 올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강대국이 아닌 거의 모든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임기응변적이고 실용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취하는 것이 상례다. 이는 대부분 헤징(hedging) 정책으로 나타나고, 어떤 조건하에서 어느 수준의 헤징 정책을 취하느냐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현재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환경에 직면하여 한국 내 논의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유연한 사고보다는 보다 극단적인 주장들에 목소리가 실리고 있다. 중국은 한국을 향해 이제는 미·중 관계의 영향에서 벗어나 보다 자율적인 한·중 관계를 형성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 방중 시 보여준 왕이 중국 외교부장 발언들은 이러한 측면을 잘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이러한 중국 측 요구를 한·미 관계에 대한 이간책으로 인식하고, 한·미 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강대국 간 세력 전이와 패권경쟁에 깊이 영향을 받는 지정학적 파쇄지대(破碎地带·shatter zone)였다. 한반도 역사에서 이를 비켜 간 예외는 거의 없어 보인다. 이는 현 미·중 간 전략 경쟁을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할 역사적 교훈을 안겨준다. 지정학적 파쇄지대에 있는 한국에 모든 강대국 관계는 항상 신중하고 고뇌하여야 할 영역이다. 역사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선택은 비용을 수반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우선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과거 사드 정책 결정 과정은 반면교사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외교·안보·경제 전략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중국과 적대 관계로 돌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다극화로 전환되는 국제질서 상황에서 강대국들과 친(親)과 화(和)를 도모하는 것은 우선이고, 적대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세계화라는 구조적인 변화에 수반되었던 복합적인 국제 경제질서는 미·중 전략 경쟁이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중첩적으로 존재한다. 즉, 단순한 이분법적인 논리구조로는 현 미·중 관계는 물론이고 복합적인 국제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중 수교 30주년이라는 기회를 잘 활용하면서 중국과 지역 안정, 새로운 경제 분업 체계 형성, 초국가 안보 대응을 위한 대화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주의할 것은 중국이 한국에 여전히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통상적·외교적·안보적 위험을 가할 수도 있는 강대국이란 점도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요소수 사태에서 잘 드러났듯이 한국은 국제 분업구조에서 취약성과 민감성이 강한 국가다. 중국에 80% 이상을 의존하는 수입 품목이 1850여 개에 달한다. 중국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생산력에 대한 의존도가 크지만 배터리 생산 분야에서 중국 영향력은 세계적이고 절대적이다.

현시점에서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세계질서에 직접 도전하기보다는 현상 유지 속에 개혁 추진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 과학적 유물론을 신봉하는 중국 지도부는 이미 국제 관계라는 상부구조를 장악한 미국에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생산력과 경제 관계라는 토대의 구축과 강화를 통해 상부구조에 대한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장기적인 과정이다. 한반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역시 북한 비핵화나 유엔 제재 준수, 한반도 안정은 자국 이익에도 중요하다. 한국은 미국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주요한 축을 담당하는 동맹이다. 이러한 축을 강화할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통일과 같은 사안에 대해 중국이 현상을 변경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치는 과감히 낮춰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결국 본질적으로 이를 해소할 한국의 역량 강화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차기 5년은 한·중 관계에 있어서 큰 격랑이 예상된다. 미국은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에 맞서서 대중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한·미 동맹에 의거하여 대만 사태에 대한 한국의 참여 보장을 요구할 수 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한·중 간 마찰로 전환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미·중 간 무력 충돌에 연루될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진퇴양난이다. 한·중 관계 30주년은 새로운 한·중 관계 30년 추이를 알리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 모두의 지혜와 신중함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픽=아주경제]

필자 주요 이력  

▷현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전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 교수 ▷전 한·중 전문가공동연구위원회(외교통상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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