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 사상 최악"…바이든-시진핑 갈등만 확인

2022-07-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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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시진핑 설전

두 정상 모두 정치 생명 걸린 시기…양보 없을 듯

펠로시 방문에 의문의 목소리도

29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한 시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전화 회담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전날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2시간가량 전화 통화를 나눴으나 대만 문제로 충돌했다. [사진=연합뉴스] 

“1972년 닉슨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 이후 최악의 상황.”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는 지난 6월 미국과 중국의 현 관계를 이처럼 말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시작된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설명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대만 방문 추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미국의 ‘칩(Chip)4 동맹’ 시동 등 경제, 외교, 안보 전 분야에서 양국 간 갈등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이뤄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통화는 악화일로인 두 강대국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날 오전 8시 33분부터 시작해 2시간 20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양국 정상은 두 나라가 직면한 개별 사안을 두고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양국은 성명을 통해 정상들이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했다고 강조했지만, 대화 면면을 보면 각 사안을 두고 평행선을 달릴 뿐 합의점이 보이지 않았다.
 
바이든-시진핑 설전, 갈등만 보였다
이번 통화의 초점은 ‘대만’인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시 주석에게 중국 본토와 대만을 통일하기 위한 군사행동에 대해 경고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통화에서 “미국은 현 상태를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시 주석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결연히 수호하는 것은 14억여 중국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며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고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시 주석은 앞서 작년 11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화상 정상회담에서도 ‘불장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대만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만을 둘러싼 양국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내달 대만 방문 추진 때문이다. 추진이 성사되면 미국 고위급 인사가 25년 만에 대만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미국이 대만과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키로 했던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국방부까지 나서서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연일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로이터는 미국 고위급 인사가 대만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미국이 중국과 대만 간 영토를 둔 분쟁에서 대만 지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대만이 아닌 중국을 인정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고수해왔다. 다만 민주국가인 대만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자기방어 수단을 제공할 근거를 법에 규정하는 등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이름은 ‘하나의 중국’이지만 사실상 중국과 대만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현상 유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통화에서 “현 상태를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통화가 끝나고 열린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리는 양국 정상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과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 등을 논의했는지에 대해서 언급을 거부했다.
 
바이든-시진핑, 정치생명 걸린 시기…양보 없을 듯
외신들은 두 정상 모두가 정치생명이 걸린 중대한 시기에 있는 만큼, 미-중 관계에서 한쪽의 양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시 주석은 오는 가을로 예정된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둘 다 썩 좋은 경제·정치 환경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에 지지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은 제로코로나 정책과 부동산 시장 위기 등 경제 전망이 어둡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대만 문제 등 외교 문제를 통해 중국 경기침체에 대한 국내 불만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갖고 갈 수 있다고 봤다.
 
이날 통화에서 두 정상은 경제 문제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시 주석은 반도체 동맹을 추진하는 미국의 움직임을 견제했다. 시 주석은 "디커플링(탈동조화)과 망 단절은 미국 경제 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세계경제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도체 공급망 등을 둔 미-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날 정상 간 통화가 끝난 지 몇 시간 만에 ‘반도체지원법’이 하원을 통과하며 미 의회의 문턱을 넘었다. 해당 법안은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는 데 미국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이 향후 10년간 중국을 비롯한 '비우호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새로 짓거나 확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어서 중국 견제법으로 통한다.
 
로이터는 이번 법안 통과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펠로시 방문에 의문의 목소리도
펠로시 의장은 29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순방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순방 일정에 대만이 포함됐는지는 불확실하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블룸버그가 전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변인인 드류 해밀은 이날 대만 방문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보안 문제를 이유로 들며 어떤 언급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블룸버그는 두 명의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펠로시 의장이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1991년 초선 의원이었던 펠로시 의장은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중국 정부의 1989년 천안문사태 유혈 진압을 규탄하는 등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천안문사태가 발생한 1989년 당시 CNN 베이징 지국장이었던 마이크 치노이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미·중인스티튜트의 선임연구원은 포린폴리시 기고문을 통해 펠로시 의장의 방문으로 인해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했다.
 
치노이 연구원은 시 주석이 3연임을 위해 당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막지 못하는 것은 시 주석에게는 실책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강경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불편한 질문을 해야겠다”며 “펠로시 의원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펠로시 의원의 계획은 대만이 자체 방어 능력을 강화하도록 지원하는 등의 미국 전략과는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만을 지지하겠다는 상징적 제스처 말고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인 스콧 케네디는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상이 자주 그리고 깊게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고위 관리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대면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이와 관련해 어떤 언급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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