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위기의 청년정치, 전환점에 서다

2022-07-1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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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지난 학기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새뮤얼 울먼의 ‘청춘’이란 시를 들려줬다. 울먼은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한다”면서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일함을 초월하는 모험심’을 청년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나이를 더하는 것만으로 늙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고 했다. 우리도 흔히 스무 살 먹은 늙은이, 80 먹은 청춘을 언급하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청년정치 위기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청년정치가 밥상머리에 오른 건 어제오늘은 아니다. 유독 회자되는 건 두 정치인 때문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37)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25). 이들은 여야를 대표하는 청년 정치인이다. 둘 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한여름 밤 꿈처럼 허무하게 퇴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소 성숙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감안하더라도 강제 퇴장을 지켜보는 건 불편하다. 뿌리 깊은 기성 정치에 청년정치가 무릎 꿇었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에 적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무늬만 청년 정치인도 문제지만 청년정치를 이벤트로 소비하는 퇴행적 기성 정치가 문제를 불렀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에 대해 ‘당원권 정지 6개월’을 결정했다. 이 대표에게 제기된 성 상납 의혹 수사는 아직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체적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윤리위 제소만으로 목을 날렸다. 한국 정치사에서 당대표를 이렇게 도륙하기는 처음이다. 여론 또한 ‘지나치다’는 게 중론이다. 이른바 ‘싸가지 없는’ 나이 어린 대표에게 ‘괘씸죄’를 물어 싹을 잘랐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선거 때는 활용한 뒤 당권 장악에 걸림돌이 되자 제거했다고 본다. 여론은 국민의힘 정치인 가운데 이준석에게 돌을 던질 만큼 도덕적 우위에 있는 이가 몇이나 될지 묻는다.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30대, 0선 당대표’로 당선됐다. 헌정 사상 처음이자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반영했다. ‘이준석 신드롬’은 보수 꼴통 정당 이미지를 일신하며 여야 가리지 않고 지각변동을 추동했다. 그는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대통령선거, 6·1 지방선거까지 파죽지세로 3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파격적 등장만큼이나 파격적으로 퇴장했다. 윤석열 대선 후보와 충돌, 정진석 의원과 갈등은 제거 명분이 됐다. 2011년 26세에 정치에 입문한 뒤 간단치 않은 내공을 보였던 청년 정치인은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 공동위원장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정치 경력은 이준석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파격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그는 n번방 추적단 활동가 출신이다. 이재명 대선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회 부위원장과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을 맡아 2030 여성 표심을 견인했다. 비록 패했지만 ‘졌잘싸’에 기여했다. 지방선거 와중에는 헌정 사상 최연소 원내 당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과 마찰, 박완주‧최강욱 의원 중징계를 주도하면서 눈 밖에 났다. 지도부 거부로 8월 전당대회 출마 계획은 좌절됐다.

정치교체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두 청년 정치인의 퇴진은 손실이다. 우리 정치는 아직 청년 정치인의 ‘싸가지’와 톡톡 튀는 개성을 포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두 정치인 발언에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선거 승리하고도 어느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대접받지 못했다”고 했다. 예우는커녕 집단 이지메를 당했던 속사정이 담겼다. 박 전 위원장도 전당대회 출마가 좌절된 뒤 “민주당이 저를 계륵 취급하고 있다. 토사구팽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정치인은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하면 안 돼’라는 이상한 결과와 인식 확산에 걱정스럽다. 한국 정치가 청년 정치인을 이렇게 소비해 버렸다”며 안타까워했지만 기성 정치인 대부분은 퇴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들은 튀는 언행으로 고립을 자초했다며 청년 정치인에게 문제를 돌리고 있다. 보다 적확한 진단은 우리 정치가 청년 정치인의 재기발랄함을 포용하지 못할뿐더러 이벤트 대상으로 여겼다는 게 맞다. 최근 여론조사(13~16일)에서 청년 정치인 등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자는 50%에 달했다. 물론 ‘경험이 부족하고 당내 갈등을 유발해 부정적’이라는 응답도 43%였지만 긍정은 우위에 있다. 세대별 인식은 엇갈린다. 18~29세와 30대, 40대에서 긍정 답변은 높았다. 반면 50대와 60대, 70대 이상은 부정적 인식이 앞섰다.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아직은 ‘꼰대’와 ‘기득권’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이 청년정치를 마냥 외면한 건 아니다. 청년 정치인 공천 비율을 높이고, 청년 정치인 첫 출마 지원단(민주당)을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선의를 보였다. 그러나 보여주기 이벤트나 선거용으로 소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럽은 나이가 아니라 유능함을 기준으로 청년 정치인을 세운다. 선거 때만 소환하는 게 아니라 양성 시스템을 갖춰 청년 정치인을 키운다. 우리도 10대부터 정당 가입과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덧붙여 대의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다양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청년층 유권자는 36~37%에 달하지만 청년 정치인 비중은 낮다. 21대 국회에서 2030 정치인은 13명으로 4.4%에 불과하다. 반면 50세 이상은 249명으로 83%에 달한다.

청년들 또한 나이를 앞세워 특혜를 받으려는 안일함에서 탈피해야 한다. 인기 영합이 아니라 실력과 정치력이 관건이다. 반짝 인기 대신 역량을 키워야 한다. 기계적인 청년 할당제는 청년정치에 독이다. 새뮤얼 울먼은 ‘청년은 한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두려움과 안일함을 넘어서는 청년이 늘어날 때 우리 정치도 건강하다. 또 튀는 언행을 ‘싸가지 없다’고 뭉개는 대신 격려하고 지지하는 사회라야 한다. 청년이 기성 정치를 흉내 낸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다. 두 정치인의 퇴장이 청년정치 실패가 아닌 새로운 전환점이길 기대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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