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시 근교 시민농장인 텃밭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답답한 도시생활에 찌든 시민들이 자연환경을 즐기고 잠시나마 생활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지자체나 공공기관들이 제공하는 텃밭이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수원 권선구 탑동에 위치한 탑동시민농장은 시민들에게 힐링을 제공하는 명소로 유명하다. 누구나 언제든 방문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어 매년 높은 경쟁률을 뚫고 16㎡ 남짓한 텃밭을 분양받은 가구(1500계좌)별로 작물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며 농업을 체험하는 도심 속 농업 활동이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시민들을 위한 텃밭으로 구획된 4개 구역 중 1구역은 어린이부터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시민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 운영되며 수원특례시가 시민들에게 몸과 마음의 건강 회복을 지원하는 ‘치유농업’을 진행하는 현장이다.
◆유아부터 노인까지 수원시민농장에서 ‘힐링’ 체험
무더위가 한창인 7월 첫째 주에도 텃밭은 어르신들과 지원 인력으로 북적였다. 이날은 봄에 심은 감자를 캐는 것이 주요 활동이었으며 이후 탑동시민농장 내 교육장으로 이동해 공유 주방에서 감자전을 부치는 간단한 요리 활동을 하는 미각 체험까지 진행했다.
어르신 10여 명이 시민농장까지 오는 길은 험난하다. 참여자 대부분이 치매 등 경도인지장애가 있거나 혼자 거동하기 어려워 1대1로 요양보호사가 활동을 보조해야 하고 수원 시내 곳곳에 계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오는 장기요양지원센터 인력까지 수십 명의 지원이 필요하다.
어르신들이 직접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어렵다. 하지만 참여 어르신들은 텃밭에 나오는 것 만으로도 생활에 활력을 느끼고 있다. 한 어르신은 “더워도 텃밭에 나오는 날만 기다려. 탁 트인 공간에 오면 기분도 좋아진다"며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들이 만든 텃밭 옆에는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농작물 체험을 하는 텃밭이 있다. 수원시농업기술센터와 한국자산관리공사 경기지역본부의 협업으로 운영되는 유아 치유생태텃밭 프로그램 ‘지구를 지켜라 꼬마농부’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텃밭 활동으로 농업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올바른 식생활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날도 ‘재크와 콩나무 어린이집’ 원아 30여 명이 텃밭을 찾았다. 어린이들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자 수원도시생태농업네트워크에 소속된 도시농업 전문가들이 강사와 체험 도우미로 나섰다. 강사가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흑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토마토를 보여주고 흥미를 끈 뒤 “토마토 꽃은 무슨 색일까요”라고 묻자 어린이들은 정확히 모르는 듯 머뭇거렸다.
결국 어린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직접 토마토 꽃을 확인하기로 했다. 밭고랑을 조심스럽게 지나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토마토를 관찰하며 꽃은 무슨 색인지, 토마토 잎과 줄기는 어떤 모양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느라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7세 어린이는 “토마토 잎에 털이 난 걸 처음 봐서 신기했다”며 “어린이집보다 텃밭에 나오는 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텃밭을 중심으로 공동체 모두가 '하나'
치유농업은 공동체 기능을 회복하고 활성화하는 데도 탁월한 기능을 수행한다. 수원 영통구 원천동 일대 실버주택 주민들로 구성된 ‘행복한 시니어 가드너’가 대표적이다.
행복한 시니어 가드너는 실버주택인 광교두산위브와 수원광교공공실버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어르신 20여 명이 모인 공동체다. 소일거리 삼아 단지 내 화단을 꾸미던 이들은 올해 수원시 ‘원예활동 전문가 활용 도시농업’ 사업 지원으로 작은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도시농업 활동을 구심점으로 활발한 소통과 다양한 공동체 활동이 이어져 이름처럼 ‘행복한 시니어 가드너’가 됐다.
이들의 텃밭은 한경대 친환경농업연구센터 한쪽에 마련된 텃밭상자들이다. 가구당 5㎡ 남짓한 텃밭상자를 개별적으로 경작하고 공동으로 경작하는 텃밭상자 5개를 운영한다. 개별 텃밭에서 자녀·손주들과 함께 작물을 수확해 나눠 먹는 일은 어르신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된다. 또 공동 텃밭상자에서 수확한 농작물은 인근 공유 냉장고나 이웃 어르신에게 선물하며 나눔의 기쁨도 누린다.
행복한 시니어 가드너는 모든 활동 과정을 자발적인 의사소통으로 결정한다. 재배가 가능한 작물을 선정하고 물을 주는 당번조를 짜고, 공동 텃밭상자 작물을 수확해 나누는 일까지 의논하고 결정하는 일이 수시로 이뤄진다. 활발한 공동체 활동은 서로 안부를 확인하며 실버 세대의 고독감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김인실 행복한 시니어 가드너 대표는 “공동체 활동으로 소외된 느낌에서 벗어나고, 70대가 넘어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젊은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탕하게 말했다.
행복한 시니어 가드너의 농업 및 공동체 활동은 사회적 기업 유한회사 초록쉼표가 돕는다. 텃밭을 설계하고 농사를 계획하는 것부터 작물별 관리법과 유기농업법, 친환경 해충퇴치제 제작까지 공동체 활성화에 밑거름이 된 치유농업 전반을 이끌었다. 재배 작물로 직접 요리해 음식을 나눠 먹는 팜파티 활동으로 이웃이 더 친밀해지는 계기도 만들었다.
윤소라 초록쉼표 대표는 “도시농업교육과 공동체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이 더 활기차게 즐거운 생활을 누리고 계신다”며 “식물을 기르며 치유 활동을 하는 것보다 텃밭 작물 활동이 더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시, 시민 삶을 건강하게 돕는 ‘치유농업’ 계속 제공키로
수원특례시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시민들에게 다양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제공해 농업을 통한 치유 활동을 제공한다. 도시농업을 넘어서 치유농업으로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수원특례시는 대상자별 욕구에 맞춰 다양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우선 ‘어울림 치유텃밭’은 지체·발달 장애인을 대상으로 신체와 정신적 발달에 도움이 되는 원예치료가 주 활동이다. 흙을 밟으며 농기구를 다루고 오감놀이와 창의 활동 등을 하며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을 돕는다. 수원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자혜직업재활센터, 에이블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 정자동장애인주간보호시설 등 장애인 지원 기관과 단체가 탑동시민농장에서 치유농업에 참여하고 있다.
‘치유농업 활용 복지화 지원사업’은 치매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도시농업 단체인 수원마스터가드너회가 아노가요양원, 사랑방노인복지센터 등 치매 어르신들에게 옥상정원 등을 활용한 신체 활동과 원예 활동으로 힐링 기회를 제공한다.
‘유관기관 연계 치유프로그램’은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 대상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사회적 배려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가정폭력 등 각종 폭력 피해자와 위기 가족이 특화된 농업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서적·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돕는 프로그램, 성인 장애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성을 향상하는 자연치유농업, 학교생활 부적응 등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자연환경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치유농업 등 총 5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공동체 텃밭에서 전문가와 함께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원예활동 전문가 활용 도시농업 시범사업’ 3개소 △교과와 연계한 텃밭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치유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학교텃밭 프로그램’ 15개소 △생활 속 원예 활동으로 도시민의 농업 체험 활동을 활성화하는 ‘아파트 힐링텃밭교육’ 10개소 △장안구민회관, 수원컨벤션센터, 서호생태텃밭 등 도심 속 텃밭 공간을 활용해 시민이 가꾸는 ‘도심형 공동텃밭 가드닝’ 4개 과정 등을 통해 치유농업을 확산하고 있다.
정순아 수원시 농업기술과 도시농업팀장은 “각종 질환과 우울증·스트레스 등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겪는 시민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활동으로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치유농장 육성과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