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두고 일본 자민당과 보수의 상징·구심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8일 선거 유세 도중 총에 맞아 끝내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정계·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연설 시작 1분만에 두 차례 총성...아베 가슴·목 부위 피범벅
8일 NHK,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19분쯤 유세장인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인근 로터리에 도착했다. 아베 전 총리는 11시30분께 연설을 시작했고, 그가 연설을 시작한 지 1분여 만에 총성과 같은 소리가 두 차례 들렸다. 당시 현장에 있던 NHK기자는 연설하는 아베 전 총리 뒤편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며 두 번째 탄에 아베 전 총리가 쓰러졌다. 아베 전 총리의 오른쪽 목과 왼쪽 가슴 부위에서 총상과 출혈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전 총리는 총격 약 15분 만에 도착한 응급차에 실려 이송됐다. 아베 전 총리는 구급차로 이송되던 초기에는 의식이 있었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기도 했으나 이후 의식을 잃고 심정지 상태가 됐다고 NHK가 보도했다. 심정지는 심장과 호흡이 정지했으나 아직 의사에 의해 사망 판정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이후 아베 전 총리는 구급용 헬기를 통해 가시하라시에 있는 나라현 가시하라시 나라현립의과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다가 오후 5시3분 끝내 사망했다. 병원측은 아베 상처가 심장에 닿을 정도로 깊었다고 설명했다.
NHK에 따르면 경찰 관계자는 아베 전 총리를 피습한 용의자는 나라시에 사는 야마가미 데쓰야(41)로 범행 직후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며 용의자로부터 사정을 듣고 상세한 상황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야마가미는 전직 해상자위대원으로 2005년까지 약 3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2006년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가 범행 이유에 대해 오락가락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애초 경찰 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이 있었고 죽이려고 생각하고 노렸다"고 진술했다고 NHK가 보도했으나 마이니치신문은 "아베 전 총리의 정치적 신념에 따른 원한은 아니다"며 "특정 종교단체 간부를 노린 것"이라 말했다고 보도한 것. 하지만 용의자가 언급한 특정 종교단체 간부는 아베 전 총리가 있던 장소에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피격 사건, 향후 일본 사회 영향 미칠 수도
아베 전 총리의 막강한 입지를 고려했을 때 이번 피격 사건은 향후 일본 정국은 물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오는 10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해 정계 유력 인사들은 전국에서 선거 유세해왔는데, 이날 아베의 총격 소식에 여야 주요 정치인들은 유세를 중단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향후 정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지만 당장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우익 세력이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고 일본 방위력 강화도 주장해왔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이 쉽게 과반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 만큼 선거 결과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사건이 일본 내부의 균열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다. 샹하오위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은 환구시보에 "아베 전 총리가 강경한 군사·안보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대한 일본 내 반감도 적지 않다"며 "냉전 이후 일본의 좌우 진영 대결이 무너지면서 자민당의 집권이 공고해졌지만 장기 불황이 이어지며 극단적 사상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석했다.
샹 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충격적"이라며 이번 사건은 전쟁 이후 일본 정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고도 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사건 직후 총리관저에 대책실을 설치하고 사건 규명 및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관저에 긴급 복귀한 후 기자들을 만나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가 이뤄지는 가운데 일어난 비열한 만행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모든 가능성을 상정하고 만전의 대응을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