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서 달러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도이체방크의 외환 전략가인 조지 사라벨로스는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달러는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속 물가 상승)의 헤지 역할을 맡았다”며 “현재 달러는 투자자에게 수익을 되돌려주는 몇 안 되는 금융 자산”이라고 밝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주식, 채권, 암호화폐, 원자재 등 자산 시장이 하락세를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달러가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난처로 떠오르면서 통화 시장도 요동치는 상황이다.
22일 엔화 가치는 1% 넘게 하락하며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36엔 중반에 거래됐다. 이는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들보다 일본의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기 때문에 섣부른 금리 인상은 일본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입장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교 교수는 이날 블룸버그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엔화가 달러당 140엔을 넘기면 일본은행이 정책 변경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달러 가치가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누버거 버먼의 글로벌 통화 관리 책임자인 우고 란치오니는 “이론상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면 달러가 장기적으로 평가절하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은 까다롭다”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성장 우려가 완화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이 진정되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파운드화는 지난주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기준금리를 5회 연속으로 0.25%포인트씩 인상한 후 손실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은 잉글랜드은행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지 않기 때문에 파운드화를 매도하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이 영국 경제에 더 깊이 파고들어 소비자 지출을 둔화시킬 것으로 본다. 영국의 인플레이션 상승폭은 4월에 9%를 기록하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운드화는 지난 1년간 달러 대비 11% 넘게 하락했다.
유럽 최대 채권 운용사 중 한 곳인 블루베이 애셋 매니지먼트의 마크 다우딩 최고 투자 책임자는 “다가오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본다.
다우딩은 “우리는 (영국) 중앙은행이 모든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앞으로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최악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을 것 이라는 믿음을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트폴리오에서 파운드화의 비중은 줄이고 달러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유가가 달러 가치에 미칠 영향을 주목한다.
BMO 캐피털 마케츠의 유럽 외환 전략 책임자인 스테판 갈로는 “올여름 유가가 급등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미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높고 달러가 석유 구매의 주요 통화인 만큼, 유가 급등은 미국 달러 가치의 상승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