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디지털 통상, 공공기관 정보부터 개방하자

2022-06-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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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10년 전쯤 미국에 갔을 때 두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처음으로 넷플릭스를 접한 것이고 내 휴대폰으로 공짜로 구글 맵을 작동하고 운전한 것이다. 넷플릭스라니! 인터넷(net)으로 영화(flicks)를 실시간으로 골라 보는 세상이 되었구나 하는 새로운 문명을 접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 가면 어떤 GPS를 돈주고 빌려 써야 하나 하고 궁리하다가 한국에서는 검색도구인 줄로만 알았던 구글로 운전까지 하게 되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2021년 세계 B2C 전자상거래 시장 매출은 5조 달러 규모로 세계 총 소매판매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해 국가간 B2C 전자상거래 무역 규모는 7600억 달러로 2014~2018년 동안에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고 있다. 가장 큰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연간 매출이 6000억 달러를 넘어선다고 하고 넷플릭스의 연간 세계 매출은 3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가파(GAFA)니 팡(FAANG)이니 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넷플릭스 등 기업들. 우리는 어느덧 디지털 통상과 이들 기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 통상의 개념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때로는 넷플릭스처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결제하는 전자상거래(e-commerce)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만져서 알 수 있었던(아날로그형) 비디오테이프 등 상품이 0과 1의 디지털 변환을 거쳐 거실에서 영화를 셋업박스 없이(OTT) 인터넷으로 감상하게 되었고 종이 수출 신용장과 선적 서류 대신 전자문서와 전자지불로 국제무역을 하게 된 점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대학에서는 온라인 강의가 대세가 되었다. 이제 디지털 전환은 경제와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디지털 경제 추세가 국가 간 디지털 통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뿐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고 필요는 시장에서 나오니 시장은 곧 발명의 어머니이다. 필요가 인터넷을 만들었고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경제가 보편화된 세상이 되었다. 1차적 필요는 2차적 수요를 낳고 인류 문명은 끝없이 진화한다. 이제 정부의 차례이다. 정부는 시장의 발명과 진화를 도와주기도 하고 가로막을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디지털 통상에 관한 규범 마련에 열심이다. WTO(세계무역기구)는 86개 회원국이 참여하여 전자상거래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미국 등 주요국은 삼삼오오로 디지털 통상 규범을 주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USMCA(미멕카 자유무역협정), 미일 디지털무역협정 등 수준 높은 디지털 통상 규범 제정을 선도하고 있다. 작은 도시국가로 국제무역과 금융을 통해서 먹고사는 싱가포르도 디지털 통상분야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열심히 한다. 싱가포르는 CPTPP, DEPA(디지털 경제동반자협정), 상호 디지털경제협정(DEA) 등을 통해서 디지털 통상협력의 파트너를 넓혀 나가고 있다. 한국도 한미FTA(2007)를 맺으면서 전자상거래 챕터를 두어 데이터 이전 자유화 규범을 도입한 이래 싱가포르와 디지털 동반자 협정(DPA)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통상과 디지털 경제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많다. 휴대폰이라면 어디에서 무슨 부품을 만들고 어디에서 조립하는지가 명확하다. 그러나 음악과 같은 디지털 통상 제품은 구입과 결제는 컴퓨터 앱을 통해 하지만 컴퓨팅 설비는 어디에 있는지, 돈이 어느 나라의 매출로 잡히는지도 분명치 않다. 금융결제의 관리, 세금 포착(디지털세), 거래과정에서 제공된 개인정보의 보호 등 모든 것이 정부의 몫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가 갈린다. 정보와 데이터는 돈이기 때문에 각국은 가급적 많은 정보를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한 미국은 컴퓨팅 설비 현지화(localization)를 하지 말고 데이터의 자유로운 국경간 이동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리정보의 국경간 이전이 허용되었다면 한국에서도 구글 맵이 작동하였을 것이다. 15억 인구에 정보와 데이터가 많지만 정보 관련 기술이 아직 발전 과정에 있는 중국은 정보와 데이터의 해외 이전을 막고 컴퓨팅 서버 현지화를 요구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전자적 전송에 대한 무관세를 제외하고는 국제적으로 디지털 통상 규범에 대한 통일된 입장이 없는 실정이다.
 
디지털 통상과 디지털 경제의 본질은 자원 활용의 제약을 해체하여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변환을 통하여 자원의 공간과 시간적 활용 제약을 줄이고 산출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사회의 유휴 자동차와 주택의 가용 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함으로써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자는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AirB&B) 등 공유 플랫폼도 디지털 경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경제의 발생은 시장이고 그 추동력은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싱가포르에 갔을 때 그랩(Grab)이라는 싱가포르식 우버 택시의 출범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택시 업계의 반대 속에 시작한 Grab은 지금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합의가 되지 않는 원격 진료(telehealth)도 미국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연장선에서 사회적 자산인 정보와 데이터의 자유로운 유통과 공유를 통한 사회적 이익 극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이와 더불어 개인의 정보 보호 문제와 독점적 위치에 있는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힘의 사용을 견제하는 균형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디지털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공공기관의 정보부터 개방하고 기관간의 시너지가 제고될 수 있도록 마치 고속도로들이 연결되듯 정보와 데이터의 접속점(JC)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반대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은 담가야 한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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